“4년뒤 언니들처럼 되고싶은데… 코치도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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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여고 컬링부 5명의 꿈과 현실

2016년 2월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여자고등부, 여자일반부에서 각각 우승한 의성여고 컬링팀(앞줄)과 당시 경북체육회 컬링팀(가운데 줄)이었던 ‘팀 킴’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류영주 양 제공
2016년 2월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여자고등부, 여자일반부에서 각각 우승한 의성여고 컬링팀(앞줄)과 당시 경북체육회 컬링팀(가운데 줄)이었던 ‘팀 킴’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류영주 양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딴 ‘언니들’처럼 모두가 우연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이 다 하기에 재미있어 보여서”,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해서” 컬링을 접했다. 그런데 이젠 누구보다 진지하게 컬링으로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경북 의성여고 컬링부 류영주(19·졸업·스킵) 안정연(18·리드) 최수연(18·세컨드) 김수현(18·서드) 류혜진 양(18·후보) 등 5명의 이야기다. 이들은 23일 인터뷰, 25일 전화 통화에서 “언니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다시 열심히 해서 더 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25일 값진 은메달을 안긴 ‘팀 킴(Team Kim)’ 5명 중 4명이 의성여고 선배다.

○ “언니들 보면서 다시 힘내”

언니들은 의성여고 컬링부의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팀 킴’의 리드인 김영미(27)는 이들이 의성초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할 때 코치 역할을 했다. 최 양은 “지난해 4월 언니들이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로는 거의 얼굴을 못 봤지만, 그 전에는 주말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여행도 함께 갔다”고 말했다. 서드 김경애(24)와 후보 김초희(22)가 이들을 데리고 올림픽이 열리는 강릉으로 즉흥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들은 언니들이 의성으로 돌아오면 여행을 같이 가는 게 바람이라고 했다.

후배들은 언니들의 갑작스러운 인기가 얼떨떨하면서도 자극제가 됐다고 했다. 류영주 양은 “‘팀 킴’은 원래 대회 체질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최 양도 “같은 훈련장에서 연습했던 언니들이 맞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김 양은 “우리도 언니들처럼 열심히 훈련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다. 서로 응원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경이 복잡하다. 이들은 “솔직히 컬링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업팀이 많지 않아 장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 적절한 훈련과 실전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받을 컬링 전문가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컬링은 취미로 해도 되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라”라고 충고한다. 1월 열린 제9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컬링 여고부에서 의정부 송현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장 최근 졸업한 류영주 양이 일반 대학으로 진학을 한다.

○ 올해 지원자 0명…명맥 이을 걱정

전국에 컬링 열풍이 불고 있지만, 컬링 선수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전담 코치 부족은 엄연한 ‘현실’이다. 컬링을 ‘교기’로 정한 의성여고조차 전문 코치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의성여고 컬링팀에는 현재 기술코치가 없다. 김 양은 “지난해 초부터 선수들끼리 훈련했다. 방향성도 없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나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3월 ‘팀 킴’의 의성여고 시절 코치였던 김경석 씨(53)가 학교를 떠난 뒤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체육교사로 전입 온 강천석 교사(50)가 코치 대행 격으로 나서 규정집과 유튜브 동영상을 일일이 찾아가며 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성여고는 경북도교육청에 “전문 코치 1명을 배치해 달라”고 줄곧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청 관계자는 “도내 체육 육성학교로 초중고교 총 270개교가 지정돼 있다. 컬링 지원을 확대하면 다른 종목도 챙겨야 해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의성여고가 교육청에서 훈련비 등으로 지원받는 자금은 연간 1300여만 원이다. 한 번에 1000만 원 이상이 드는 해외 전지훈련은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바뀐 규정을 잘 몰라 컬링부 학생들이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전에 아예 출전도 못 하는 일까지 있었다.

올해 의성여고 컬링 특기생으로 지원한 학생은 없다. 지금 컬링부에 남아 있는 선수 4명도 내년에 졸업한다. 의성여중에서 지난해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배우던 학생 6명은 “컬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에서 컬링 심판으로 활동한 김 씨는 “그동안 정치인 등이 컬링을 지원하겠다고 한 적은 정말 많았지만 모두 말뿐이었다”며 “일회성 관심으로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팀 킴’의 이번 올림픽 선전이 의성여고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의성군은 이르면 올 하반기 의성여고에 코치 1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최 양은 “올림픽 이후 컬링장이나 대회가 많이 생기고 실업팀도 늘어나면 나도 컬링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성=신규진 newjin@donga.com / 강릉=권기범·이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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