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세돈]한미 FTA 재협상 요구, 미국의 진의 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미국의 무역협상 권한은 행정부 아닌 의회에 있다
美무역대표부의 협의 요청… 對韓 무역적자 때문인지 의문
방위비 증액, 사드 배치 등… 정치적 목적 위한 지렛대라면 문제해결 복잡해질 가능성도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채 보름도 안 된 12일 미국은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22.2조에 의거하여 개정이나 수정을 포함하는 한미 FTA의 운영상의 제반 문제를 협의(consider)하기 위한 특별공동위원회를 30일 이내에 개최할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리고 ‘특별공동위와 후속 협상을 통해 ①한미 FTA의 적용 문제를 점검(review)하고 ②시장 접근에서의 현안을 해결함과 동시에 ③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 문제 해결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성급한 한국 언론은 이것을 곧바로 재협상(renegotiation) 요구로 보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솔하게 잘못 말려드는 일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재협상이라는 단어가 없다. 또 미국의 무역협상 권한은 행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의회에 귀속돼 있다. 다수 상하원 의원이 행정부에 대해 무역촉진권한법에 따른 절차, 즉 협상 90일 전 의회에 통보하고 협상 30일 전에 협상목표를 공개하라는 규정 준수를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현재 미국 행정부의 요구는 한미 FTA의 재협상이 아니라 특별공동위에서의 협의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의 ①한미 FTA의 적용 문제(implementation)에 관해서는 미국이 별로 따질 것이 없어 보인다. 한국이 협정을 잘못 적용한 적도 없고 또 미국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 협정을 잘못 해석하거나 혹은 협정의무를 위반하거나 혹은 협정에서 보장하는 혜택을 거절한 적도 없다. 한국에 흠잡힐 만한 잘못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이 계속해서 적용 문제나 협정의무 위반이나 이익 거부를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면 한국은 합의(consensus)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은 제22.4조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절차는 매우 지루하다. 양국 및 제3국의 3인 위원으로 된 분쟁해결위원회를 구성하는 데만 최대 126일이 걸리고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는 데도 최장 225일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분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남은 카드는 한미 FTA의 일방적 파기 선언밖에 없다.

다음으로 ②시장 접근에서의 현안이란 주로 금융, 법률, 경영자문과 같은 전문서비스업 분야에 대한 보다 폭넓은 규제완화일 텐데 이 부문에 관해서는 큰 무리 없이 양국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③한국에 대한 무역적자이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중국(516억 달러) 독일(152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139억 달러)로 증가 폭이 커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무역적자로 한미 FTA를 개정하거나 파기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첫째, 한미 FTA 종료로 얻을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대미 수출은 크게 타격을 받겠지만 그것이 미국의 고용 증가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본이나 중국의 수출로 메워질 것이다. 둘째, 한국의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대미 반감은 비례하여 커질 것이다.

만약 미 행정부의 진의가 대한국 무역적자의 축소에 있다면 양국의 의견 합치는 쉽다. 액화석유가스(LPG)나 셰일석유 같은 전략상품의 대미 수입을 늘리거나 쟁점이 되는 철강이나 자동차 혹은 그 부품에 대한 관세 양허 수준을 재조정하거나 혹은 서비스 분야의 시장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 어렵지 않게 합의에 이를 수가 있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 같은 우리 관심분야에 대한 관세 양허율 조정을 얻어낸다면 서로 상생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미국의 진의가 방위비 분담 증액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같이 다른 이익을 챙기려고 무역적자를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은 복잡하게 꼬인다. 특별공동위 협의를 통해 다른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것도 적절하지 않지만 우리 측에서 단순한 협의 요청을 지레 한미 FTA의 재협상 요구로 부풀려서 문제를 확대해석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5년간 캐나다 멕시코와의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는데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미 fta 재협상 요구#한미 fta 적용 문제#한미 fta 확대해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