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공항패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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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공항패션이란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공항에서 입은 옷을 말한다. 처음엔 일반인들이 공항에서 우연히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연예인들의 패션을 가리켰지만 요즘은 관련 기업에서 사진을 제공한다. 간접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선글라스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는 5월, 연예인들의 공항 사진에서 선글라스만 눈에 들어오고, 해외 유명 모델들이 인천공항에서 특정 브랜드의 가방을 살짝 내밀며 걸어 들어오는 것도 ‘공항 노출 계약’ 때문이다.

공항패션이 하나의 산업이 된 이유는 공항이란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현실의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찾아보는 길이 여행이고, 공항은 그 여정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스타들도 여행할 때는 협찬 의상이 아닌 자기 옷을 입는다는 전제와 그들의 사적인 모습에 열광하는 대중과 미디어가 공항패션을 만든다. 공항패션은 패셔니스타를 탄생시킨 동시에, 옷 못 입는 연예인의 명단도 만들었다. ‘입으면 유행’이라는 A급 연예인이 공항패션 노출로 업체에서 받는 돈은 2000만 원 정도인데,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SNS로 확산되는 이미지가 광고모델의 등급을 정하니, 연예인은 방송 의상보다 공항 문을 들어서는 몇 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공항패션은 박근혜 대통령의 히잡이다. 박 대통령은 1980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방문하는 첫 번째 비(非)이슬람권 여성 지도자로, 정교일치 국가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히잡 공항패션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광고이자, 국정 수행 지지도 최저치를 경신한 대통령의 간접광고였다. 그 가치를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 세계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은 나라, 불가사의할 정도로 낮은 여성의 지위,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낯선 체제조차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공항에 내리는 순간 흰색 천 한 장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히잡보다 내 눈에 더 들어온 건 대통령의 연한 녹색 재킷과 물방울무늬를 앞섶에 댄 분홍 재킷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봄날의 옷’이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 항상 방문국의 상징 색을 의상에 반영하고 분홍, 연두 등 중간 컬러에 부드러운 스카프를 활용해 공감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국내에서 대통령의 옷은 고명도의 원색 혹은 무채색이다. 경제를 살리자고 말할 땐 빨강, 기강을 강조할 땐 청색, 안보 관련 행사에선 국방색을 입는 식이다. 계절감도 없는 일방형 지시, 군대식 신호다. 최근 대통령은 “경제를 활력 있게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제가 열정의 색깔인 빨간색 옷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빨간색은 파란색 한나라당에서 180도 달라지겠다는 자기반성, ‘레드 콤플렉스’ 극복, ‘붉은 악마’로 상징된 젊은 세대에 대한 공감을 뜻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설명이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옷이 연설 이상으로 강력한 호소이자 간접광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활용해 온 정치인이다. 공항패션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알린 대통령이 국내에선 지시와 명령만 전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옷을 잘 입는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일을 잘하면 뭘 입어도 좋게 보인다는 거다. ‘유능하다’와 ‘아름답다’는 반대말이 아니다. 우리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공항패션#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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