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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 지원했더니… “전투기 모는 여자 있냐?” 비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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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 지원했더니… “전투기 모는 여자 있냐?” 비아냥

동아일보입력 2013-11-14 03:00수정 2013-12-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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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여성시대]2부 전문직<12>PD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KBS ‘개그콘서트’ 출신 스타 PD인 서수민 CP(현 ‘해피선데이-1박2일’ 책임프로듀서)는 1995년 입사했다. 7명의 PD 입사자 중 그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때까지도 예능국에는 여자 PD가 없었다. 처음 여자 PD를 맞는 스태프들은 당황했다. 나이 든 편집기사는 그를 ‘미스 서’라고 불렀다. 연예인 매니저들도 여자 PD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악바리처럼 일했다. ‘남자 같다’는 말을 칭찬처럼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KBS의 대표적인 스타 PD가 된 그는 “이제는 언론을 비롯한 주변에서 프로그램의 PD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좋은 점에 대해 말을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이렇게 밝혔다.

“PD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설마 여자를 PD로 뽑겠느냐’며 회의적이었다. PD가 된 뒤에도 여성다움을 숨기기 위해서 노력했다. 결혼이나 임신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경험이 PD로서 내 자산이 됐다.”(서수민)

현재 서 PD가 몸담고 있는 KBS 예능국에는 PD 102명 중 여자 PD가 28명이다. 이들은 KBS의 주요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현 ‘개그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김상미, 박지영 PD를 비롯해 ‘우리 동네 예체능’ 이예지 PD, ‘해피투게더’ 윤고운 PD, ‘맘마미아’ 조현아 PD,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 등이다. 올해로 입사 11년차인 박지영 PD는 “여성 PD가 늘면서 방송국 문화도 점차 바뀌고 있다. PD 일을 하는 데 성별이 문제 되던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간한 2012년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KBS MBC SBS 지상파 3사의 PD 직군은 약 2400명이다. 이 중 여성 비율은 22%인 531명이다. 5명 중 1명은 여성인 셈이다. 방송국에서 여자 PD는 여전히 소수지만 2000년대 초반 지상파 방송국 여성 PD의 비율이 10% 남짓이었던 것에 비하면 10여 년 사이 그 수는 급증했다.

여자 PD가 방송국에 대거 입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실제로 KBS의 경우 2001년 PD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9.1%였던 반면 10년 후인 2011년에는 40%에 달했다.

KBS가 공영방송국이기 때문에 사기업보다 신입사원 선발에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MBC나 SBS도 흐름은 비슷하다. MBC 관계자는 “2000년대 사번을 가진 입사자 중에는 이전에 비해 여자 PD가 눈에 띄게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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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풍이 거센 곳은 케이블 방송. 18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CJ E&M의 경우 여성 PD의 비율이 30%가 넘는다. 이영균 CJ E&M 방송홍보팀장은 “CJ E&M의 대표 프로그램인 Mnet의 슈퍼스타 K는 시즌 4와 시즌 5 모두 각각 여성 PD가 맡아 화제가 되는 등 주요 프로그램을 맡는 여성 PD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자 PD들의 전공은 어떨까. 여러 장르가 있지만 단연 두드러진 분야는 ‘예능’이다. 앞서 언급한 KBS 서수민 CP와 함께 대표적인 여성 스타 PD로 꼽히는 SBS 예능국 최영인 CP는 ‘진실게임’ ‘야심만만’ ‘밤이면 밤마다’ ‘힐링캠프’ 등 SBS의 대표적인 토크 오락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MBC에도 ‘우리 결혼했어요’를 기획·연출하고 ‘안녕 프란체스카’ ‘세바퀴’ 등을 연출한 조희진 CP가 있다. 최영인 CP는 “예능 PD는 시대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각이나 시청자의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한데 특히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해진 환경에서 프로그램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여성의 섬세함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가 여풍이 센 또 다른 분야로는 라디오 PD가 있다. SBS ‘두시 탈출 컬투쇼’의 오지영 PD, MBC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 김나형 PD, KBS ‘황정민의 FM 대행진’의 유경숙 PD 등 인기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여자 PD들이 많다. MBC ‘FM음악도시’ ‘재미있는 라디오’ 등을 연출한 안혜란 CP는 “2000년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 PD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여자 신입 PD 비율이 더 높을 때가 많다”며 “여성이기에 무조건 유리하다고 할 순 없지만 라디오 PD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에는 일상에 대한 관심이나 감수성 등 여성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게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방송 현장에 여자 PD가 늘면서 프로그램의 내용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대중문화 속 여성 캐릭터가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개그 프로그램의 경우 늘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 캐릭터 일색이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여성 PD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여성 PD의 증가가 방송국 조직과 방송계 문화 전반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뀐 게 술자리 문화. 한 매니지먼트 기획사 관계자는 “PD들과 종종 술자리를 갖는 편인데 여자 PD들은 남자 PD들보다 일처리도 깔끔하고 술 접대 같은 것도 싫어해 업계에서 여성 PD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가에 금녀의 구역은 있다. 바로 ‘드라마’다. 스튜디오 촬영분이 많은 예능과 달리 야외 촬영이 많고 육체적으로도 고돼 ‘험한’ 분야로 평가받는 드라마 영역에 진출한 여성 PD들은 아직 적다. 지상파 방송국을 기준으로 미니시리즈를 연출한 여성 드라마 PD는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트리플’ ‘골든타임’ 등을 연출한 이윤정 PD와 ‘아들 녀석들’ ‘글로리아’ 등을 연출한 김경희 PD, 현재 KBS 월화드라마 ‘미래의 선택’ 연출자이자 앞서 ‘강력반’ ‘못된 사랑’ 등을 연출한 권계홍 PD 정도가 전부다.

드라마 장르는 연출 데뷔를 하는 시기가 늦고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수많은 스태프를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MBC 이윤정 PD는 “과거처럼 드라마 연출자를 여성이 하는 것 자체를 부인하는 풍토는 이제 없어졌으나 여전히 여자가 소수이기에 겪는 어려움은 남아 있다”면서 “남자 연출자는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만 여자 연출자는 개인차를 보지 않고 ‘여자들은 저렇다’며 싸잡아 평가받는다”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입사 초 드라마 연출에 지원했을 때 ‘전투기 모는 사람 중에 여자는 없다’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다. 여자가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연출자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는 촬영 현장에서 여성 연출자는 때로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리더십에 대해 의심을 받기도 한다.”

임신, 출산, 육아 문제도 여성 PD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출퇴근이 불규칙한 업무의 특성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 PD들도 적지 않다. 미혼인 한 여성 PD는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 선배를 보면 과연 나도 결혼을 해서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여성 PD에 대한 편견은 아직 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상파 방송국 관계자도 “신입 PD를 뽑을 때 똑똑한 여성 지원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아도 실제 결과를 보면 여성이 남성의 수를 넘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남녀 차별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PD로는 ‘남자가 적합하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이와 함께 방송계 역시 ‘유리천장’ 문제가 존재한다. 현재까지 방송국의 정책결정권자는 다수가 남성이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국 관계자는 “간부는 아직도 남성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여성의 시선보다는 남성의 시선이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계 여풍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입사한 여성 PD들이 차례로 연출 데뷔를 앞두고 있으며, 올 5월 KBS에서 지상파 방송국 최초로 여성 부사장(류현순)이 나오는 등 임원급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지상파 방송국의 임원급 관계자는 “방송국은 철저히 시청률이라는 성과로 평가받는 조직이다. 성별보다는 실력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면서 “여성 PD가 늘면 그에 맞춰 환경이 변화하고 차별이나 편견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가인 문화부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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