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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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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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네요. 부처님도 동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면서요. 하긴 억천만겁을 윤회하면서 살아보지 않은 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은 아주아주 어려운 일이라 합니다. 사람 아닌 존재는 무시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허송세월로 흘려보낼 수 없는 사람의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겠습니다. 사람이 세계니까요.

사람이 세계입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만나 삶이 바뀝니다. 명문가의 아들인 플라톤은 정치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됩니다. 현자를 만나 운명이 바뀌고 운명을 바꾼 거지요. 아테네 민주정치가 꽃을 피웠던 그때 가장 전설적인 정치인은 역시 설득의 귀재였던 페리클레스였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참전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을 위해 그가 남긴 추도사는 지금도 전해질 만큼 명문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되 사치로 흐르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되 나약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를 자랑거리가 아니라 행동의 기회로 알고 활용합니다. 가난을 시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나, 빈곤 타파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페리클레스의 강연을 좋아했던 알키비아데스는 제자들과 대화하는 소크라테스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강연도 들었으나 이렇게 가슴이 설레고 떨리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소크라테스가 세상에서 없어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어진다면 내 슬픔 또한 커질 것입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왜 소크라테스를 좋아하면서도 종종 죽기를 바랐을까요. 자신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지요. 불쾌하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자기 그림자를 보기 싫어, 거울이 되고 있는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나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죽은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세상을 떠나자 플라톤은 아테네를 떠납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세상에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마 플라톤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 스승의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 버리고 유랑을 떠납니다. 충격과 고통의 심연에서 걸어 나올 힘이 생길 때까지 세계 곳곳을 떠돌았던 거지요. 그리고 10여 년 후 자신을 떠나게 했던 처음 그 자리, 아테네로 돌아와 소크라테스를 회상합니다. 실제 소크라테스의 생각일 거라고 추정되지 않는 대화록에서도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것은 소크라테스야말로 플라톤 세상의 원천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스승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고 합니다. 스승을 만난 자는 스승은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이고, 목숨이라고 고백합니다. 달마선사로부터 내려오는 선불교의 맥이 되고 있는, 인천 용화사의 송담선사와 그 스승 전강선사의 일화는 스승과 제자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보여줍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6·25전쟁 난리통에서도 전강선사는 수행하는 제자의 양식을 구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나는 죽어도 너는 살아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람 좋은 사람의 착한 매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속의 참사람을 찾고자 하는 제자에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는 스승의 배려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아주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삶에서 존엄을 발견한 사람의 힘, 현자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부처님오신날#페리클레스#알키비아데스#제자#소크라테스#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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