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45>술 취한 여자와 취한 척하는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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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여성을 ‘썸 타는’ 초식남이 택시에 태웠다. 여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일어나지도 못했다. 남자는 여의치 않자 그녀를 업고 “이쪽이 맞느냐”고 물어물어 집으로 향했다.

송년 모임이 이어지는 시즌, 드물기는 하지만 술 취해 정신 줄을 놓은 여자만큼 난감한 상대가 없다. 당차고 똑똑한 여자들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체중 관리를 잘해도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무겁다는 점이다. 어깨에 멘 여자의 가방까지 걸리적거려 가뜩이나 힘든 초식남을 더욱 괴롭게 했다. 땀이 줄줄 흐르고 몸에서 김이 올랐다.

남자는 다음 날 아침, 돌연 싸늘해진 여자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던 것일까?

여자가 친구들에게 성토한 남자의 잘못은 “그렇게 버려놓고 가는 인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침대에 짐짝 부리듯 놓고는 이불을 끌어다 대충 덮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찾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그렇게 기억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깨어 있었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적지 않은 여성이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둔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하고는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는 것이다. 한데 초식남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가는 그녀가 인사불성이니 돕는 게 당연했지만 ‘그녀의 기억에 없는 시간’을 두고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업고 다닌 것만으로도 지쳤으므로 빨리 돌아가 쉬고 싶기도 했다.

남자가 물을 마시고 떠난 뒤 여자의 마음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의 매너에 안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어쩐지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물론 그녀가 기대했던 것은 다정함이었다. 최소한 이불을 여며주며 “잘 자요” 한마디는 남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성이 취했는지 아니면 취한 척하는지 헷갈릴 때에는 다른 여성의 도움을 얻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혀가 꼬인 여성이 비틀대며 화장실에 간 사이 팀장이 잘생긴 남자 사원에게 말했다. “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것 아니야?” 다른 여성이 자리에 앉으며 간단히 정리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 애, 화장실에서 눈썹화장 고치고 있더라고요.” 여자의 속내는 여자가 제대로 알아본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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