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민선]‘위탁양육 가정’이 적은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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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선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소장
조민선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소장
최근 동아일보 내러티브 리포트에서 일본 도쿄도의 위탁 양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인 부부의 이야기(2월 23일자 A8면)를 감동 깊게 읽었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말은 남녀 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리라. 버려진 아이에게 혈연이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가족을 선물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애에 입각한 사랑의 실천이고 이를 제도화한 것이 위탁가정, 입양가정일 것이다.

위탁부모 권한은 적고 책임만


국내에도 일본의 위탁양육 프로그램인 사토오야(里親)제도와 같은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있다. 친부모가 질병, 수감, 가출, 사망, 학대 등의 이유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을 때 일정 기간 위탁부모가 대신 키우며 아이가 이후 친부모와 재결합하거나 자립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이 서비스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내러티브 리포트를 읽으며 일본과 한국의 질적 차이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기사에 등장한 한국인 부부는 급하게 집을 비워야 했을 때 아이를 잠깐 다른 위탁부모에게 맡길 수 있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위탁부모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려고 해도 여권을 만들어주기가 어렵고 아이를 위한 통장이나 휴대전화도 마음 편히 마련해줄 수가 없다. 모두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응급수술이라도 받아야 해서 친권자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위탁부모는 발만 동동 구르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국내에서는 위탁부모가 친부모나 다름없이 양육할 수 있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 게다가 갓 태어난 신생아든 고등학생이든 지원되는 양육수당은 12만 원에 불과해 위탁부모에게 또 다른 경제적 부담을 안겨준다. 그러니 자진해서 위탁 양육을 하려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친부모의 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친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를 위탁가정에 맡겨 놓고 아이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쓰면서 요금을 내지 않아 아이를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경우도 보았다. 정작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서 아이 통장으로 입금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몰래 찾아 쓰는 친부모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친권을 제한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위탁부모가 키우는 경우 한시적으로 친권을 제한하며 위탁부모에게 양육에 필요한 법적 권한을 제공하고 아이가 친부모에게로 돌아갈 때 다시 친권을 회복시켜주는 법안이 지난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 위탁부모가 권한을 갖고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친부모도 친권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재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처럼 위탁가정에서 아이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하며 안전한 양육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친권제한 등 법적 권한 제공해야

덧붙이고 싶은 말은 위탁 양육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를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로부터 아빠와 성(姓)이 다르다고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탁가정뿐 아니라 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입양 가정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일정한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아이에게는 가정에서 살 권리가 있다. 친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적어도 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자라도록 지원하는 게 최우선이다.

조민선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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