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와인 사랑이 연 인생 2막… ‘회장님’ 들도 단골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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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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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에서 와인 수입업체 운영 최은석 VinCSR(씨에스알와인) 대표

지난달 20일 만난 최은석 VinCSR(씨에스알와인) 대표는 건축설계사의 꿈을 잠시 접고 와인으로 인생의 항로를 돌렸다. Vin CSR의 
와인들은 ‘회장님 와인’으로 각광받을 정도로 와인업계에서는 독특한 와인 셀렉션으로 유명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달 20일 만난 최은석 VinCSR(씨에스알와인) 대표는 건축설계사의 꿈을 잠시 접고 와인으로 인생의 항로를 돌렸다. Vin CSR의 와인들은 ‘회장님 와인’으로 각광받을 정도로 와인업계에서는 독특한 와인 셀렉션으로 유명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올해 1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의 칠순 기념 만찬에서 그룹 사장단에게 선물한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 2병이 화제가 됐다. ‘시네 쿼 논 레이블스’라는 레드와인와 ‘벨 코트 샤도네이’라는 화이트와인, 이 두 컬트와인이 주인공이다. 컬트와인이란 극소량만 생산되며 당대 최고의 기술로 제조되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말한다.

이 중 시네 쿼 논 레이블스는 70만 원대의 고가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는 이 회장이 미국 컬트와인을 선물한 것을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그 진의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다. 삼성전자가 현재의 위치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캘리포니아산 와인 특유의 도전정신과 창조성을 전달하려는 의미가 담겼다는 것.

그 가운데서 시네 쿼 논 레이블스는 라틴어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와인 라벨의 독특한 의미 때문인지 세간의 주목을 더 받았다. 그런데 이 회장의 입맛을 바꿔 놓은 이 컬트와인은 유명 와인수입업체나 대기업이 아닌 ‘Vin CSR’라는 작은 와인수입업체가 들여왔다.

한동안 누구나 돈만 있으면 뛰어들었던 와인 수입업계가 규모 위주로 재편되는 가운데 회사가 설립된 지 5, 6년밖에 안 된 Vin CSR가 국내에 들여오는 컬트와인은 특급호텔이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 유명 레스토랑 와인 메뉴에서 빠지질 않는다. 와인 수입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최은석 VinCSR(씨에스알와인) 대표(37)를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건축설계업계 1위인 희림건축에 몸담고 있었다. 서울대, 미국 컬럼비아대를 거쳐 30대의 나이에 임원 자리까지 오른 최 대표가 건축가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굳이 ‘와인 장사’에 나선 까닭이 궁금했다.

미국 부티크 와이너리 오너인 만프레드 크랑클이 직접 이름을 다는 시네 쿼 논 시리즈. 왼쪽부터 레이블수, 샷 인 더 다크, B20
미국 부티크 와이너리 오너인 만프레드 크랑클이 직접 이름을 다는 시네 쿼 논 시리즈. 왼쪽부터 레이블수, 샷 인 더 다크, B20
“회사 이름을 와인을 뜻하는 ‘빈(Vin)’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줄인 ‘CSR’를 합쳐 만들었죠.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와인을 들여오는 것이 회사 모토이자 제가 사업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30대 초반 우연히 와인의 마력에 빠진 최 대표는 매일 밤 퇴근 후 6병의 각기 다른 종류의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매일매일 자신이 마신 와인에 직접 평점을 매겼다. 이를 로버트 파커의 평점과 비교했고 다시 엑셀 파일로 정리해 뒀다.

그렇게 하기를 3년. 이미 유명 와인수입업체 VIP 명단에는 최 대표의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였고 자신이 매긴 와인 평점은 로버트 파커와 일치하게 됐다. 최 대표는 “처음 접하는 와인이라도 한 번 먹어보면 로버트 파커 평점을 그대로 맞춰 주위 소믈리에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와인의 맛을 알게 되니 이제 와인 가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품 가득한 국내 와인 가격에서 최 대표는 인생의 2막을 발견했다. 그래서 2006년 무작정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한 부티크 와이너리의 오너인 만프레드 크랑클을 찾아가 ‘와인을 수입할 수 없겠느냐’고 찾아갔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노(No)’. 최 대표는 “대기업도 아닌 신생 와인수입업체에 수십만 원짜리 와인을 건네줄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다시 연락을 했더니 ‘줄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4년째가 되던 해 최 대표에게 ‘아직도 우리 와인에 관심 있느냐’는 내용의 e메일이 도착했다. 최 대표는 “‘물론’이라고 회신하니 와이너리 측에서 A4 용지 앞뒤로 20쪽에 걸쳐 질문을 빼곡히 적어 보냈다”며 “질문에는 와인에 대한 내용은 없고 영화, 미술,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했다”고 말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성실히 답을 적어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한 달 내내 감감무소식이던 미국 와이너리로부터 ‘올해부터 와인을 나눠 주겠다’는 회신이 왔다. 알고 보니 그 와이너리는 국내 유명 대기업을 비롯한 10군데에 똑같은 질문지를 보냈던 것. 최 대표는 “미국 부티크 와이너리 운영주들은 괴짜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며 설득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셔온’ 와인이 바로 시네 쿼 논 시리즈다. Vin CSR에서 취급하는 와인은 한 병에 싸게는

20만, 30만 원에서부터 비싸게는 100만 원이 넘는 제품까지 고가 위주다. 그렇다 보니 ‘회장님’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이 단골손님이다.

마지막으로 와인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 한 가지를 물었다. 와인을 비교해서 마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와인을 주문하고 나중에 와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와인 고르는 것이 귀찮아 한 종류의 와인만 마시기 때문”이라며 “같은 가격대, 같은 와이너리에서 수입된 것이라도 종류를 다르게 시켜 보면 비교를 하게 되고 와인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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