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수곤]‘절개지는 무너져야 돈을 번다’ 산사태, 눈먼 양심이 부른 人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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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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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 학과 교수·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 위원회 한국대표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 학과 교수·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 위원회 한국대표
지난달 29일 서울 초안산 중턱 경원선 이설공사를 위한 절개지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 1500t이 하부의 국철 1호선 철로와 동부간선도로를 덮쳤다. 열차는 붕괴 직전 통과했으나 지나던 차량 3대가 매몰돼 4명의 인명 피해가 생겼고 국철 1호선이 5시간 동안 불통됐다. 이는 국내 절개지의 허술한 건설 관행과 사전 관리체계의 맹점이 부른 예고된 사고이지만 정부 당국과 언론은 구조적 원인을 간과하고 있다. 매년 산사태로 평균 60명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를 겪지만 대부분 불가항력인 사고로 간주해 적극적인 대비를 하지 않는다. 이런 실상을 알면 집중호우 시 대규모 사고가 또 어디서 날까 두려울 정도다. 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초안산 사고는 국내 절개지 건설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사고는 해당 산지의 지형과 지질에 맞는 배수시설을 고려하지 못해 발생했다. 사전에 충분한 지질조사 없이 설계하는 관행 때문에 공사 도중 절개지의 30% 정도가 붕괴되거나 설계 변경된다. 몇 해 전 경남 김해 농공단지에서 특정 절개지가 7년간 6차례나 무너져 매번 안전진단과 보강공사를 했으나 또 무너져 21명이 매몰되고 200억 원의 재산 피해가 생겼다. 국고에서 240억 원의 복구비가 지급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폭우에도 안전하도록 국내 절개지 설계 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러므로 사고의 대부분은 부실한 지질 조사로 인한 인재(人災)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원인 규명을 위한 안전진단은 관련 당사자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불가항력인 자연재해로 대부분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설계자와 시공자는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복구 공사비만 늘어나며 과다 보강하는 경우도 있어 절개지는 무너져야 돈을 번다는 말까지 나돈다.

다른 문제점은 관리주체가 달라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는 것이다. 초안산 사고를 보면 상부지역 공사는 철도청 관할이지만 피해는 하부지역인 서울시 관할에서 발생했다. 관할별로 재해를 관리하는 국내 법규상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필자는 재작년 소방방재청 ‘사면 붕괴 예측 및 대응기술 개발’ 연구과제에서 관할을 초월한 통합관리 필요성을 제시했고, 서울시에도 작년 9월 폭우 후 같은 내용의 정책제안을 했다.

이처럼 관할별로 관리되므로 절개지뿐만 아니라 산지의 자연적 산사태 위험 대비도 미흡하다. 상부지역의 자연적인 산사태 위험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하부지역을 개발하므로 산지에 인접한 주택가와 국도, 고속도로는 대형 산사태 피해에 대부분 무방비 상태다. 최근 개통한 KTX 일부 구간과 심지어 청와대 주변 계곡도 마찬가지임을 필자가 확인했다.

그리고 산사태 위험지역의 사전 관리도 형식적이다. 산사태는 매년 발생하는 주요 재해이지만 정부에 전담하는 기관이 없어 전국 100만 개, 서울 10만 개로 추정되는 산사태 위험지역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 7월 부산 163곳과 작년 9월 서울 78곳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사전에 위험하다고 관리한 수백 곳과 거의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다. 초안산 사고지역도 관리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실상이 이런데도 산사태를 천재지변이라며 발뺌하는 게 주요 20개국(G20)에 속하는 한국의 재해대책 수준인가?

이러한 구조적 근본 원인을 무시하고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면 언제든지 대형 산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증가하는 산사태 피해의 국제 공동해결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가 올해 초 발족했다. 우리 정부도 국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국제 수준의 산사태 피해 줄이기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또 효율적인 부처 간 통합관리를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산사태 전담기관을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 학과 교수·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 위원회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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