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경미]수학이 문학을 만났을 때

  • Array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인기몰이를 하는 아이돌 그룹 중에 f(x)가 있다. 수학의 함수 기호 f(x)를 쓴 이유는 x값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함수처럼 멤버의 다양한 재능과 매력을 보여주자는 의미라고 한다. 또 다른 아이돌 그룹 2NE1에서 숫자를 영어로 발음하면 투엔이원으로 21(twenty one)과 유사하게 들린다. 2NE1 멤버의 데뷔 당시 평균 연령이 21세였기 때문에 21로 작명했다고 하지만 수학 관련자들은 2NE1이 ‘2 Not Equal 1’, 즉 ‘2는 1과 같지 않다’는 자명한 명제를 나타낸다고 기발하게 해석한다.

숫자가 포함된 그룹명이 늘어난다는 면에서 수학과 대중문화는 미약하나마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수와 수학적 개념은 시나 소설 같은 순수문학에 반영되기도 한다. 수학과 문학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감성의 정수를 담은 문학 작품에 무미건조한 수학이 등장한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천재 시인 이상의 실험적인 시에서 기수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오감도’의 첫 번째 시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는 제1의 아해부터 제13의 아해까지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시를 분석해 보면 이상이 십진법을 염두에 뒀음을 알 수 있다. ‘제1의아해가 무섭다고그리오’ 다음에는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라고 되어 있다. 주격조사가 ‘가’에서 ‘도’로 바뀐 것이다. 이는 제10의 아해까지 계속되다가 제11의 아해에서는 주격조사 ‘가’가 사용되며 제12와 제13의 아해까지는 다시 주격조사 ‘도’가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제10과 제11 아해의 행 사이에는 한 줄의 빈칸을 둔다. 즉 이상은 제1부터 제13까지를 단순 반복으로 보지 않고 10을 기준으로 일단락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 번째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띠를 180도 꼬아 양끝을 연결해 고리 모양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뫼비우스의 띠는 보통의 고리와 달리 안팎의 구분이 없다. 독일 수학자 아우구스트 뫼비우스가 생각해 낸 뫼비우스의 띠는 앞면이 뒷면이 되고 또 뒷면이 앞면이 되므로, 소설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거꾸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중층적 의미를 드러내는 은유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는 위상수학이라는 분야의 연구를 촉발시킨 순수한 수학적인 개념이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중에는 한 번 꼬인 뫼비우스 띠 모양이 많다. 이유는 벨트의 양쪽 면이 골고루 기계에 닿게 되므로 균일하게 마모돼 벨트의 수명이 길어지고 벨트가 잘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열한 번째 소설은 ‘클라인 씨의 병’이다. 독일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이 고안한 클라인 병은 위와 아래가 뚫려 있는 원기둥에서 옆면을 뚫고 원기둥의 위와 아래를 연결해서 만든다.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

이런 소설 대목에도 나오듯이 클라인 병에서는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없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관점을 자유롭게 전환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데 클라인의 병은 이에 대한 적절한 상징물이 된다. 문학적 상상력을 수학의 개념을 통해 표출한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