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준안된 韓日 강제합방, 국제법상 무효”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1910년 한일강제합방으로 국권을 빼앗긴 뒤인 1918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대한제국 황족과 조선총독부 고관들이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아래 모자 벗은 사람이 고종, 오른쪽이 순종이다. 고종 왼쪽은 영친왕이고 영친왕 옆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다. 사진 제공 서울대 박물관
1910년 한일강제합방으로 국권을 빼앗긴 뒤인 1918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대한제국 황족과 조선총독부 고관들이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아래 모자 벗은 사람이 고종, 오른쪽이 순종이다. 고종 왼쪽은 영친왕이고 영친왕 옆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다. 사진 제공 서울대 박물관
한일강제합방 당시 일제가 발행한 공로메달.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일강제합방 당시 일제가 발행한 공로메달.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10년 한일병합(한일강제합방) 당시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진 국제법 개념에 따르면 전권을 위임받지 않은 사람이 체결해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지 않은 한일병합 관련 조약은 무효다.”

박배근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법)는 17일 “한일병합 당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서양과 일본의 국제법 개설서들을 분석한 결과 당시 국제법은 한일병합이 조약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한국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 ‘시제법적 관점에서 본 조약 체결의 형식과 절차-한일병합 관련 조약 유무효론 평가를 위한 일고(一考)’를 22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여는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2010년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을 앞두고 그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이를 본격 재조명하는 첫 학술회의다.》

■ 내년 100주년… 동북아역사재단 22일 국제학술회의

한일강제합방의 불법성을 둘러싼 기존 논쟁이 한일 양국의 문제로 한정된 반면 박 교수는 ‘특정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난 당대 법의 효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시제(時際)법을 기초로, 세계에 통용된 국제법의 관점에서 한일강제합방 관련 조약 문제를 접근했다.

이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이 서명한 뒤 내각의 의결을 거쳤으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한국 학자들은 1905년의 을사늑약 등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조약들이 △국가 대표에 대한 강박으로 이뤄졌고 △국가원수가 대표를 임명한 전권위임장, 조약문에 대한 황제의 비준 서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당사국인 한일 양국의 합의로 조약 체결 형식이 정해졌기 때문에 조약 형식의 문제가 조약의 효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관행에 따라 조약은 전권위임장과 비준 없이 체결, 발효하기도 했다고 맞서 왔다.

박 교수는 9세기 말∼20세기 초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국제법 개설서의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약 체결 대표가 직책상의 권한을 넘어서는 조약을 체결해서는 안 되고 △외무장관이나 외교사절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권위임장이 반드시 요구되며 △조약은 비준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견해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영국 법학자 오펜하임은 ‘국제법’(1905년)에서 “조약은 정당하게 권리를 부여받은 대표의 행위에 의해 상호 합의가 명백해지는 순간에 체결되지만…비준이 이뤄지지 않는 한 조약은 체결됐다고 하더라도 완전하지 않다”고 썼다. 일본 법학자의 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키야마 마사노스케의 ‘국제공법완(國際公法完)’(1893년)은 “(조약) 체결권이 없는 자가 주권자로부터 위임을 받아 상대방 국가의 정부와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그 정부에 제시하여야 할 신임장 외에 위임장을 휴대해야 한다…지금은 조약이 비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전권위임장이나 비준서도 없이 체결한 한일강제합방 관련 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은 당시 국제법에 비춰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박 교수는 “당시 유럽 중심, 제국주의적 성격의 국제법은 힘을 사용한 조약 체결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강압에 의한 한일강제합방 조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이태진 교수, 이 교수와 함께 한일강제합방이 무효라고 주장한 저서 ‘한일병합과 현대’를 펴낸 사사가와 노리가쓰 일본 메이지대 교수 등 한국 미국 일본 학자 9명이 발표한다. 지명관 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과 무사코지 긴히데 일본 오사카경법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이 기조연설에 나선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0년 8월 △한일강제합방의 불법성을 보여주는 국내외 실증자료 △국권침탈로 파생된 일제강점, 일본군 위안부, 문화재 약탈 등의 문제 △아시아 역사의 화해와 평화 구축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를 잇달아 열고 2011년 학술회의 결과를 출판할 계획이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 같은 3개년 계획을 추진할 준비위원단을 이태진 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 태평양아시아연구학부장 등 한미일 학자 13명으로 발족했다”고 말했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도 2010년 8월 ‘국치 100년’ 공동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 10개 연구단체가 참여했다. 한국근현대사학회는 2010년 8월 ‘대한제국 국권상실 100주년 학술회의’를 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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