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서 열린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의 숨겨진 비밀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7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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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1805∼1807년.
자크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1805∼1807년.
프랑스 고딕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상징이자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린 역사적인 장소다. 그중 1804년 12월 2일에 거행된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장소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궁정의 수석화가였던 자크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대관식의 역사적인 장면을 화폭에 기록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두 번째로 큰 이 그림은 폭이 거의 10m에 달하는 대작이다. 화면은 웅장한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서 나폴레옹이 부인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고, 황제 바로 뒤에 앉은 교황 비오 7세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고 있다.

정말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화가의 충성심과 황제의 오만함이 합작해 만든 허구의 대관식 장면이다. 잘 알려진 대로 나폴레옹은 교황에게서 왕관을 빼앗아 스스로 머리에 썼다. 다비드는 이 불경스런 상황을 직접 목격했지만 황제가 황후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곤혹스런 일은 덮고 화려한 대관식 그 자체만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가운데 귀빈석에 앉은 황제의 어머니와 맨 왼쪽에 서있는 형 조세프는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등장한다. 당시 중년이던 왕비는 20대 미녀로, 왜소했던 황제는 건장한 미남으로 변신했을 뿐 아니라 원래 스케치에서 두 손을 무릎위에 모으고 있던 교황은 황제의 요구로 오른 손을 들어 축복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비드는 황제의 잦은 변덕과 요구에 부응하느라 수차례 수정을 거듭한 뒤 꼬박 3년에 걸쳐 그림을 완성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실각했을 때 화가는 조국을 떠나야했지만 그가 그린 이 역사의 한 장면과 무대는 프랑스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856년 역사의 노트르담은 지난 15일 발생한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 일부가 불탔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표현은 프랑스인들의 참담한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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