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죽고 싶을 때 꼭 해야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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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 의사 같았다. 진료하던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정신과 의사의 기사가 뜬 2018년 마지막 날, 나는 ‘우울증 앓는 의사’의 에세이집을 떠올렸다. 이름도, 책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느낌은 대개 정확하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이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과 전문의 임세원. 빈소를 찾은 사람들 다섯 중 한 명은 환자들이었다니 얼마나 좋은 의사였는지 능히 짐작된다. 절대 고인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결코 원만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타인과의 관계도 부드럽다기보다 까칠한 편”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2016년에 쓴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다. 그랬던 사람이 바뀌었다. 미국 연수 중이던 2013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어린 두 아들을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들이 구해준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에 그는 감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크게 바뀐 것처럼 안 보일지 몰라도 타인들에게 가능한 한 친절해지고자 노력하고 있다…내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매일 만나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외래 진료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한다.”

‘임세원, 그 이름이 희망입니다’서울 강북삼성병원 본관 로비에 설치된 ‘추모의 벽’에 1월 7일 고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교수를 기리는 200여 개의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다. 환자와 가족, 추모객들이 ‘친절한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고인의 생이 고통과 우울함에 몸서리친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동아일보 DB
‘임세원, 그 이름이 희망입니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본관 로비에 설치된 ‘추모의 벽’에 1월 7일 고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교수를 기리는 200여 개의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다. 환자와 가족, 추모객들이 ‘친절한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고인의 생이 고통과 우울함에 몸서리친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동아일보 DB


10년 이상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도 한결같이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걸 보면 자신이 까칠한 성격이라는 건 겸손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아니, 실은 까칠했는지도 모른다. 도통하지 않은 이상, 누구에게나 언제나 부드러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대로 살지 않고 허리통증까지 참아가며 친절해지도록 노력을 했고, 그래서 환자들이 원래 친절한 의사로 알고 있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다.

임세원도 아파서 죽고 싶었다

다시 들춰본 그의 책에는 우울증이 아니어도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이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했다. 실제로 그 자신이 고통을 끼고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 인생 최고의 전성기 같던 2012년 6월의 어느 금요일, 해외 연수 환송회를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이미 약속이 잡혀 있던 새벽 골프까지 잘 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해 주차하고 내리는 순간, 마치 누가 허리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됐다. 디스크였던 모양이다. 수술을 포함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으로 인해 우울증 치료 의사는 그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면서 모두에게 폐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 자동차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 자살이라는 것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그는 한국자살예방협회 교육위원장이었다). 드디어 자살을 결심한 날, 자동차를 끌고 나가려는데 글쎄 아무리 찾아도 자동차 키가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작은방까지 가서 키를 찾던 그는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는 자살 생각을 접었다. 차츰 그는 고통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해갔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을 썼다.

우울해서, 사는 낙이 없어서, 내가 없어지면 고통도 사라지겠지 싶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럴 때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은 너무나 많다. 서두르지 않기(특히 자살. 죽고 나면 영화처럼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원인을 찾지 않기(질병도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다. 설령 안들, 원인을 바로잡는다고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족들한테 신경질내지 않기(돌아서면 당장 후회한다)…. 이보다 좀 쉬운 일이 있다고 임세원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죽더라도 임세원 말대로 해본 다음에, 죽도록 하자.

죽고 싶을 땐 뭔가 해야 한다. 일에 열중하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에 몰두하거나,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몰입을 한다. 이왕이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하라. 운동도 좋고, 컴퓨터게임도 좋다. 전혀 모르는 언어, 독일어 강습을 받거나 단체여행을 가보라. 동아일보 DB
죽고 싶을 땐 뭔가 해야 한다. 일에 열중하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에 몰두하거나,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몰입을 한다. 이왕이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하라. 운동도 좋고, 컴퓨터게임도 좋다. 전혀 모르는 언어, 독일어 강습을 받거나 단체여행을 가보라. 동아일보 DB


첫째, 루틴을 유지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포함해 다 때려치우고 싶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럽고, 일어나기도 싫고, 밥도 먹기 싫고, 누구를 만나기도 싫고, 누가 말 시키는 것도 싫을 것이다. 그럴수록 이제까지 해오던 일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직장은 절대 그만두지 말 일이다. 가장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된다. 지금은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시기여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 그만둔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를 닦듯, 제때 일어나고 세 끼 밥시간에 밥을 먹고 동창회에 나가는 일상을 계속하라. 매일 나가는 직장이 없다면 아침 도서관이나 주민센터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가라. 이렇게 하루하루 견뎌 나가다 보면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조차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각 하나로 인해 나머지 인생의 조각들까지 전부 없애 버리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임세원 말씀).

다음에 쓴 대목은 거의 성자(聖者)의 경지다. “평생을 고통에 시달린다고 해도, 수많은 오늘을 견디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둘째, 몰입한다.

일에 열중하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에 몰두하거나,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몰입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더 고통스럽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들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고?

그럼 새로운 것을 하라. 운동도 좋고, 컴퓨터게임도 좋다. 전혀 모르는 언어, 독일어 강습을 받거나 단체여행을 가보라. 그래도 뭔가에 몰입해 있어야 시간도 후딱 가면서 고통에서 잠시라도 자유로워지고 죽고 싶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정말 중요한 팁 하나!

비싼 학원비는 냈지만 막상 갈 때가 되면 분명 가기 싫어질 것이다. 우리의 임세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꾸 변경함으로써 미래를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계획대로 해보다가 잘 안되면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 혹시 아는가. 새로운 것을 해보다가 진짜 좋아하게 되고, 살아갈 이유가 될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을 주변에선 모를 수 있다. 설사 알더라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손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죽고 싶다”고 말하시라. 없으면 천사라고 소문난 직장 동료도 좋다. 사진은 서울 마포대교 위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 1588-9191. 동아일보 DB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을 주변에선 모를 수 있다. 설사 알더라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손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죽고 싶다”고 말하시라. 없으면 천사라고 소문난 직장 동료도 좋다. 사진은 서울 마포대교 위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 1588-9191. 동아일보 DB


셋째,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여기서부터는 임세원이 말하지 않은 내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을 주변에선 모를 수 있다. 설사 알더라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손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없으면 천사라고 소문난 직장 동료도 좋다. 생명의 전화도 있다 1588-9191) “죽고 싶다”고 말하시라. 듣고 나서 “그래 죽어라” 할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대부분 위로의 말을 해줄 것이다. 아무리 성의 없는 위로라고 해도, 그게 뜻밖에 알부민 주사가 된다.

전문적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미국에선 ‘관심 산업’이 성장세라고 15년 전 쓴 기억이 있는데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의 자세로 고객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진실과 상관없이 고객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말만 해주기 때문이었다(비싼 돈은 그래서 받는 거다)!

가끔은 진실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알쓸신잡(알아봐도 쓸데없는 신기한 잡놈)이라고 해도, 내게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 같은 사람도 괜찮다면, 오늘은 내가 누군가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 최고의 독자이셨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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