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소영]‘밀레니엄 베이비’의 수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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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속에 희망 품고 태어난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 2000년生
2001년生보다 8만 명 더 많아 유치원부터 대입까지 경쟁 고통
중고교 시절 저당 잡히는 시대, 오늘 수능 수험생들이 마감해주길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첫아이를 가졌을 때 처음엔 그냥 기뻤다가 출산일이 다가오자 걱정이 몰려왔다. 얼마나 아플지 어떻게 아플지 전혀 감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주위에 물어보니 애 키우느라 정신없는 언니들이나 친구들이 한결같이 애 키우는 것에 비하면 애 낳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격려해 주었다.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막내를 떠올리면 배 속에 아홉 달 품고 있던 시절에 비해 셀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 있었으니 그 말은 백번 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정말 궁금했던 것은 출산이라는 고통의 모습이었다. 가사 시간에 졸다가 바늘에 찔려 으악 하고,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때 동네 하천에 빠져 둥둥 떠내려갔다는데 분명 숨 못 쉬어 답답했을 테고, 대학 때 인도로 들이닥친 차에 부딪혀서 한동안 욱신거렸던 것, 이 모든 신체적 고통은 아무 계획 없이 당한 것이라 고통을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출산은 언젠가 치러야 할 100% 확실한 고통인데 그 정체를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금방 애 낳은 선배가 그 정체를 알려줬다. 자기가 참을성이 꽤 있는데도 애 낳는 것은 진짜 죽을 정도로 아팠다면서 사이사이 진통이 멎을 때 이게 언제 끝나나 하지 말고 다음 번 진통을 대비해 숨을 잘 고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고통의 느낌도 송곳에 찔리거나 둔탁한 것에 맞는 게 아니고 진통 초기에는 생리통과 비슷하다고 했다. 선배의 조언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진통의 파고가 지나서도 다음 진통을 준비하려고 혼비백산한 정신을 수습하고 있었는데 애가 스르르 나왔다.

오늘 처음 수능을 보는 고3은 ‘밀레니엄 베이비’, 우리말로 즈믄둥이다. 1990년대 말 닥친 외환위기 속에서 새 천년의 희망을 품고 태어난 이 또래들은 유치원 입학부터 시작해 상급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바로 위아래 출생아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극심한 경쟁을 치렀다.

2000년 태어난 아이는 모두 63만6780명으로 2001년보다 8만여 명 더 많았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던 2007년에는 어느 유명 사립초교 정원 144명 모집에 무려 953명이 몰렸다. 방과후수업이나 학원도 지원자가 훨씬 많아 몇 주씩 대기하는 등 즈믄둥이 수난 시대라는 하소연도 나왔다. 그러다 보니 ‘2000년생 엄마들의 극성은 유별나다’거나 ‘99년생은 재수하면 끝장이다’라거나 별별 억측이 돌기도 했다. 내신·학생부 조작 얘기가 한두 해 나온 게 아닌데 숙명여고 사태가 하필이면 지금 터진 것도 우연은 아닐 터다.

온갖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오늘 수능장에 도착한 즈믄둥이의 부모는 수능보다 확실히 수능 이후가 더 어렵다는 걸 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는 수능을 준비한 기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수많은 아픔과 슬픔이 이어질 것이기에.

그럼에도 출산만큼 100% 확실한 고통인 대학입시를 유달리 센 강도로 같이 겪어낸 즈믄둥이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그 정체를 주변에 정확히 알려줄 능력 아니 의무가 있다. 하루 12시간 혹은 그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고, 구속 수감자도 아닌데 대부분 꼼짝없이 앉아 있고, 야식과 폭식을 불러일으키는 심적 부담감에다 새치기로 노력이 증발하는 경험까지, 입시의 고통은 막연한 괴로움이 아니라 진통의 파고처럼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점점 강도가 세어진다.

새 천년을 열며 태어났지만 즈믄둥이들은 출생부터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출생자 수는 연 60만 명 선이 완전히 붕괴하였고, 이제 즈믄둥이들이 고교를 졸업하면 1970∼90년대 압축성장과 민주화 시대 태어난 학생들은 고등학교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수십 년 전 입시를 치른 부모들은 아무리 입시보다 더 힘든 인생의 파도를 넘어왔다 해도 입시의 고통만큼은 오늘 수험생들보다 확실히 감이 떨어질 것이다. 얼마나 아플지 어떻게 아플지 답답해하던 막내딸에게 출산의 고통을 자세히 기억해내기 어려웠던 친정어머니처럼.

고통의 극복은 고통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나 같은 학부모나 선생님, 입시 전문가, 정책 짜는 사람들 모두가 입시 경쟁의 고달픔에 대해 글로 말로 쏟아내지만 정말 입시의 고통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한국 사회에서 중고교 시절 몸으로 마음으로 시간을 저당잡히는 시대를 마감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수능#베이비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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