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성공하고 개혁에 실패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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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무대 콘텐츠진흥원, 탁현민의 측근이 낙하산 탔다
문재인 청와대도 과거 정부처럼 “안 된다” 직언하는 사람 없나
개혁세력이 일거에 장악한 靑, 무엇을 위한 적폐청산인지 집권 성공 때의 초심 생각하길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왜 하필 콘텐츠진흥원장인가.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의 고용주였던 다음기획의 전 대표 김영준 씨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는 보도에 나는 혼자 탄식을 했다.

낙하산이 한둘도 아니고, 3부 요인 인사도 아닌 건 안다. 그럼에도 가슴이 내려앉는 건 그 상징성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비선실세 논란으로 주목받은 문화권력 기관이 바로 콘텐츠진흥원이었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 자신의 대부로 통하는 송성각 씨를 차관급 콘텐츠진흥원장에 앉힌 사실이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불거지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이 드러났던 거다.

그런 공공기관이면, 암만 김 씨가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선거캠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대도 절대 안 갔어야 적폐청산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인사가 와야 정의로운 사회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차은택-송성각-청와대 수석실-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문화 농단을 질문했던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작년 말 실세 행정관의 대부 같은 김 씨를 똑같은 자리에 모시며 “콘진원의 개혁과제를 잘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놨으니, 하이고 내가 다 낯간지럽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퇴를 건의했는데도 대통령 방중까지 수행하는 이유는 장소불문 절대 필요한 탁현민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라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대통령 신임을 받는 측근의 측근이라도 음악부터 방송,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까지 연 3000억 원 예산을 다룰 만큼의 전문성은 입증하기 힘든 인물을 낙하산으로 보내는데 “안 된다”는 참모가 없었다는 건 새해를 암울하게 만든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역할을 해야 할 비서실장의 책임이 크다. 이명박 정부 때 같은 역할이었던 임태희 한국정책재단 이사장은 “자천타천으로 추천이 들어오는 건 별문제 아니지만 ‘깜’이 안 되는 사람이 밀고 들어올 때가 문제”라며 “진짜 대통령비서실장 외에는 풀 사람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당일 임명된 임종석 비서실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때문에 심신이 복잡해서라면 몰라도, 탁현민이 최순실 게이트 이후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광흥창팀에 같이 속했기에 임 실장이 눈감았다면 공사(公私) 구별 못 하는 국정의 사사화(私事化)다.

안 그래도 1980년대 운동권 중심의 광흥창팀 13명 중 최측근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뺀 전원이 청와대를 접수한 터다. 더 두려운 상상은 청와대 참모진 아닌 대통령이 “안 된다”를 못하는 상황이다. 노무현 청와대도 86그룹 운동권이 포진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사안은 전문가와 관료의 의견을 들어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 실장이 “문 대통령은 알려진 것보다 토론을 좋아한다. 중요한 방향을 잡을 땐 토론해서 했고, 내가 (대통령을) 크게 신뢰하게 된 점이 논의한 것과 집행된 것이 같다는 것”이라고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말한 기사를 보면 누가 비서이고 누가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운동권 출신으로 채운 이유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를 장악해야 김영삼·김대중 정부의 개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개혁의 성공과 실패 조건’ 보고서에 따르면 개혁의 실패 조건이 바로 그거다. 북송시대 왕안석이나 조선 중종 때 조광조는 자신과 이상을 같이하는 개혁세력에 둘러싸여 반대의견의 타당성을 분간 못 하고 무조건 반(反)개혁세력으로 몰아붙이다 결국 실패했다.

반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성공한 개혁은 리더 스스로 비전과 역량을 지녔을 뿐 아니라 전문가를 활용하고, 야당 인사를 영입하는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공정한 인사로 반대세력의 마음까지 얻었다. 선거 공신은 부담 없는 외국 대사로 내보내는 묘수를 발휘했지 끌려다니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경제 재건에 초점을 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부문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한 개혁은 성공했지만 기득권 타도 위주의 급진개혁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내게 적폐청산의 성공과 개혁 성공의 조건은 다르다고 제발 말해줬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새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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