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세계은행 한국인 매니저들이 신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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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서울에 있을 때 광화문 앞에서 시작하는 청계천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고마운 산책로였다. 식사 후 시간이 맞는 선후배들과 함께 종로5가까지 걸어갔다 오는 사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걸음마를 마친 아이들에게 송사리가 떼로 몰려다니는 얕은 물속은 더없는 휴일 놀이터이기도 했다.

최근 세계은행의 원조를 받는 아프리카 국가의 도시개발 담당자들이 지속 가능한 수변(水邊) 공간 연구를 위해 서울을 찾아 청계천 등을 둘러보았다. 이들을 안내한 세계은행 한국인 매니저들에게서 소감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필립 무아큐사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 시 도시계획국장에게 청계천은 건강과 휴식 공간 이상이었다. 탄자니아는 최근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인도양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 주변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생활 오폐수를 흘려보내는 주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아큐사 국장은 “사진을 보니 1970년대 청계천의 주변은 지금 탄자니아 도시 하천과 매우 비슷하다”며 “생활 및 산업 오폐수로 훼손되고 아스팔트로 덮였던 도시 하천이 물고기와 새들이 뛰노는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사례를 본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한강 정책선(한강 홍보를 위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배)을 처음 타본 모세스 앤트윈 우간다 수도 캄팔라 시 도시계획국장도 생태공원으로 재개발되고 있는 한강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연방 탄성을 질러댔다.

1980년대 한국의 산업화 당시 치수 위주로 개발됐던 한강이 다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는 장면은 생활 오폐수로 빅토리아 호수 등 수자원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우간다의 현실에 비춰 보면 너무도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2013년 세계은행에 설립한 ‘한국녹색성장신탁기금(그린펀드)’을 활용해 서울을 찾았다. 2016년까지 4년 동안 전 세계 나라의 도시와 교통, 수자원 개발 등에 필요한 연구 작업 등에 쓰도록 4000만 달러(약 472억 원)의 기금을 내놓은 것이다.

기금의 운용 실무를 맡고 있는 세계은행 한인 매니저 이은주 씨는 “청계천과 한강뿐만이 아니라 티머니(자동 교통요금 결제), 다산 콜센터(서울시 민원처리), 인천항 물류 처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서민 아파트 건설 등 한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생활 시스템이 저개발 국가들에는 따라 하고 싶은 ‘비전이자 솔루션’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린펀드를 활용하면 돈뿐만 아니라 한국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까지 통째로 전수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프로젝트 응모가 급증하고 있다. 그린펀드 공모 사업은 2013년 46개(사업비 1962만 달러), 2014년 50개(2668만 달러)에서 올해는 101개(47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세계은행은 프로젝트 수행 후 정식 차관 계약을 맺어 실적을 올릴 수 있고 한국은 이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다. 한국의 해당 기관과 기업들은 자체 개발한 각종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는 ‘윈윈’의 선순환이 작동하고 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국이 1955년 세계은행그룹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그린펀드를 비롯해 올해 6195만 달러를 세계은행에 공여했다. 한국인 직원도 110명가량으로 늘어났다. 새내기 한국인 직원인 이호성 씨는 “많은 나라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세계은행 한국인 매니저#청계천#그린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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