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08>늙는 것의 서러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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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의 서러움 ―마광수(1951∼ )

어렸을 때 버스를 타면 길가의 집들이 지나가고
버스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어렸을 때 물가에 서면 물은 가만히 있고
내가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 버스를 타면 집들은 가만히 있고
나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물가에 서면 나는 가만히 있고
강물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 쇼펜하우어의 이 말을 마광수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읽고 크게 공감했던 게 세월을 헤아리기 싫을 만큼 오래전이다. 쇼펜하우어도 그랬을까. 그러니 찰나의 즐거움이나마 악착같이 잡아채자고, 그를 징검돌로 인생의 지겨움을 견뎌 건너자고, 쾌락을 추구했을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쾌락은 육체의 쾌감이리라. 마광수가 필화를 겪게 한 성적 판타지를 거침없이 펼친 글들, 말하자면 ‘음란한 묘사’들은 쾌감을 원하는 게 육체의 본성인데 정숙한, 하다못해 정숙한 체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 대한 예의로 그것을 자기 속에 눌러두는 사람들의 숨통을 터주고 싶은 욕망에서 나왔을 테지만, 그의 관능에의 허무적 탐닉을 보여준다. 육체는 즐거워라! 몸뚱이가 닿고 포개짐으로 서로의 체온과 떨림이 스며들고 증폭되는 그 순간만은 존재의 외로움, 허무감이 잊히리.

당신은 숭늉을 좋아하십니까? 나는 달콤하고 짜릿한 ‘환타’를 좋아합니다. 다들 정장 차림인데 혼자 해수욕장인 양 수영팬츠 하나 걸치고 유유해서 점잖은 양반들 입술을 실룩거리게 하던 마광수가 ‘늙는 것의 서러움’이란다. 이제 고통도 쾌락도 덤덤해질 연세이련만 여전히 ‘느끼는’ 그다. 어렸을 때는 세상 이치도 잘 모르고 주의 산만해서 착각과 환상 속에 산다. 그런데 이제 바로 보고 바로 느낀다. 그것이 시인은 도무지 서먹하고 쓸쓸하고 재미없다. 사물과 현상을 곧이곧대로 느끼는 게 영 이물스러운, 이 이상한 감각이 다 늙어서 생긴 거라고 서러워하는 시인이다. 보아하니 나라는 존재에 아랑곳없이 세상 돌아가고 세월이 흘러가누나. 도취도 상상도 멀어진 노년의 우수가 찰랑찰랑 와 닿는다.

황인숙 시인
#늙는 것의 서러움#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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