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절대 결혼하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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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형으로서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절대 결혼하지 마.”

결혼 4년 차인 30대 남성 지인이 모임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일하는 게 정말 좋다”던 여자친구가 부인이 되자 “친구들은 다 집에서 쉬는데 너무 힘들다”고 징징거리더니 1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답니다. 혼자 뼈 빠지게 일해 돈 벌어 와도 한 달 용돈 30만 원으로 사는 인생이 처량하답니다. 결혼 전엔 예비 시부모에게 “천사 같다”는 극찬을 들을 만큼 잘했던 여자가 결혼하고 나서 시댁에 갈 때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얼굴을 찡그린답니다. 나긋나긋했던 말투는 어느새 자기 남동생을 대하듯 하대하는 말투로 바뀌었답니다.

“너라도 결혼하지 마”라는 말은 결혼적령기라는 30대에 접어들면 ‘결혼 선배들’로부터 흔히 듣는 말일 겁니다. 총각으로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조적인 농담인지, 피맺힌 절규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요직에 있으면서 일에 치여 사는 사람들이 “승진 안 해도 되니까 한가한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는 말이 대부분 진심이 아닌 것처럼, 이미 결혼한 승리자들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주로 이런 말을 할 때 씁쓸한 눈빛과 함께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는 걸로 봐선 진심 같기도 합니다. 참으로 진심인 듯 진심 아닌 진심 같은 말입니다.

‘아프니까 결혼이다’라는 인터넷 소설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부 남성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식 빼곤 다 잘한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이용자가 연재한 소설인데 △연애에 목숨을 걸다 △헬게이트 오픈(지옥문이 열리다), 예식 △결혼, 허울뿐인 무상섹스 △희망, 나의 분신 △집구석 △숨지고 싶다 △손절 타이밍 △잘 놀다 갑니다 등 8개 챕터로 구성돼 있습니다.

소설은 한 남자가 대학 시절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연애 과정, 결혼 준비와 결혼 생활을 철저하게 남성 편에서 그립니다. 처음엔 여자친구가 보낸 문자 하나만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어느새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라고 다그치는 여자친구에게 이유도 모른 채 싹싹 비는 모습, 결혼 준비하면서 전세금 한 푼 보태지 않으면서도 조금 작은 집을 보러 가면 “나 기분 다운됐어”라며 토라지는 예비 신부에 대한 분노, 침대에서 자는 아내를 뒤로 하고 혼자 시리얼을 급히 말아먹고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고 자위하는 출근시간대 일상 등을 그릴 때면 공감하는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들이 태어난 이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내가 200만 원짜리 유모차를 사고 남편 몰래 대출을 받다 걸리면서 잠깐 삐끗하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소소한 행복을 이어가지요. 40년 넘게 혼자 살면서 결혼한 부하직원들을 놀려댔던 일벌레 상사가 퀭한 오피스텔 방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사건을 보며 결혼하길 잘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식하는 친구에게 보증을 서줬다가 사기당하는 바람에 집을 날리고 이혼당한 뒤 자괴감에 빠져 쓸쓸히 생을 마감하며 소설은 끝납니다.

소설은 “결혼하는 남녀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남편’이나 ‘아빠’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워낙 남성 처지만 옹호해 쓴 글이라 여성이 보기엔 다소 억지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SNS상 유부남들이 “다 읽고 나니 말 못할 답답함이 밀려온다”고 한탄하며 적은 댓글들을 보면 총각들은 결혼이 겁날 수밖에요. 이 작품이 SNS에 널리 퍼지자 “즐길 만하니 결혼이다” “살 만하니 정년이다” 등의 후속작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통상 매년 11만∼12만 쌍의 부부가 이혼합니다. 다른 이성과 외도한 배우자를 형사처벌하는 간통죄가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폐지되면서 외도에 대한 심적 부담이 줄어 결국 이혼율이 더 높아질 거란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어차피 결혼해도 이혼할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맘 편히 혼자 살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다음 세대에는 싱글 생활이 보편화돼 ‘아프니까 결혼이다’ 대신 ‘아프니까 싱글이다’라는 소설이 SNS에서 큰 인기를 끌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결혼#이혼#간통죄#아프니까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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