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조성하]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이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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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일본인은 상상력이 부족한 하위인종이지만 능숙하고 현명하니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쓰기에 적합하다.’

1940년 어느 날. 나치독일을 좇아 삼국동맹에 가입하자는 일본 해군장교들에게 한 제독이 책의 이 부분을 찾아 읽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책엔 그 구절이 없다”며 항의했다. 그러자 또 다른 제독이 바로잡았다. “너희 번역본엔 이 11장이 통째로 삭제돼 있으니까.” 그 책은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 독일이 일본인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깨우쳐 준 이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었다.

이건 2011년 일본서 개봉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란 영화의 한 장면. 거기엔 ‘70년 만에 밝히는 태평양전쟁의 진실’이란 부제가 붙었다. 포스터 문구는 ‘여기 누구보다도 전쟁을 반대한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극중 대화는 삼국동맹을 둘러싼 당시 군부 내 갈등을 잘 보여준다. 삼국동맹이란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의 독일이 일본을 세계대전에 끌어들이는 제안. 유럽대륙은 두 나라가 싹쓸이할 테니 아시아는 일본이 손아귀에 넣고 3국이 동맹해 슈퍼파워 미국에 공동대응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당시 일본―중일전쟁으로 피폐해진―을 전쟁 광풍으로 몰고 갔다. 20세기 초 일본이 일군 경제부흥과 국부가 전적으로 전쟁 덕분이어서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불황은 때마침 터진 세계대전(제1차)으로 극복했다. 또 그 전 러일·청일 두 전쟁은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각종 이권을 안기며 국부를 배가시켰다. 하지만 1937년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당시 일본경제를 궁핍으로 몰아넣었다. 전쟁의 단맛에 굶주린 일본에 삼국동맹이 탈출구로 보인 건 당연했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찮았다. 핵심은 해군성, 거기서도 야마모토 제독. 그는 전쟁이 외교의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부전론자다. 그런데도 운명은 진주만 공습의 총책임을 진 연합함대사령관으로 그를 데려갔다. 전몰자 246만6000명을 신격화한 야스쿠니신사에 그가 포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거기서 서민―황족이 아닌―중 최고서열(정삼품)이다. 필리핀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극동군사재판에서 1급 전범에 포함됐을 인물이다.

내가 그 이름을 안 건 중학생(1971년) 때다. 단체 관람한 한 할리우드 무비 ‘도라 도라 도라’―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그린 영화―에서다. 까까머리 중학생 뇌리에 그가 일순간 각인된 이유. ‘도라 도라 도라’(공습성공 암호)라는 전문에 모두 ‘반자이(만세)’를 외칠 때 어두운 표정의 그가 한 독백―우리는 잠자는 거인을 깨웠다―에 비친 통찰력 덕분이었다. 목표한 항공모함은 진주만에 없었고 그건 도쿄의 하늘을 전력 10배의 미국에 내준 셈이니 이 전쟁이 스스로 패망을 자초한 오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그런 통찰의 배경을 알게 되는데 내겐 40년이 걸렸다. 그건 태평양전쟁 개전 70주년(2012년)을 맞아 나루시마 이즈루가 감독한 이 영화다. 제독이 삼국동맹에 반대한 건 일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동맹 즉시 일본은 미국의 적이 되는데 미국을 절대 이길 수 없어서였다. 그럼에도 동맹은 체결됐고 그는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발령된다. 그날(1940년 9월 27일) 일본의 한 신문 1면 제목은 이랬다. ‘일본을 태운 버스가 드디어 달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 야마모토 제독은 젊은 기자에게 그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는다. “대동아 공영권? 정말로 그런 곳이 있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구먼.”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눈도 귀도 마음도 크게 열어 세상을 보라”고. 나는 이 제목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1995년 과거사 사죄담화는 번복하며 일본군 위안부 부인에 평화헌법 개정으로 군대까지 부활하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우익 광풍이 삭아들지 않는 한 영원히.

더불어 야스쿠니신사 참배객에게 권한다. 야마모토 제독의 이 말도 기억하라고. “잘 잊는 것도 이 나라 사람들의 능력일까?”라는. 러일전쟁 중에 10만 병사를 잃은 게 30여 년 전인데 벌써 잊고 미국과 전쟁하겠다는 당시 일본인에게 던진 자조 섞인 한탄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일본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나는 이웃으로 바란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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