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금주]‘최고의 타미플루’는 자신감과 통제감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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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위험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를 가진다. 저명한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는 위험이 예상되는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했다. 공포란 위험한 사건이 가져오는 실질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고 능력 없다는 생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리처드 래저러스 역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무력감이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했다.

반대로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기대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이는 30여 년 전 쥐에게 한 고전적 실험에서 이미 밝혀졌다. 두 마리의 쥐를 묶어두고 약한 전기충격을 받게 하는데, 이때 한 마리는 옆의 버튼을 눌러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자신이 전혀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처음 전기충격이 시작되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두 마리의 쥐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한 마리의 쥐는 버튼을 누르면 멈추는 것을 깨닫고 다른 한 마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두 마리 모두 어느 정도의 전기충격을 실질적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 이 상황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쥐가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고 위궤양도 적었다.

절망감 무력감이 스트레스 원인

그런데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안이나 공포가 감소된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데이비드 벌로 연구팀은 두 그룹의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 5.5%의 이산화탄소를 투여하면서, 한 그룹에는 환자들 스스로 이산화탄소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고 거짓으로 알려주었고 다른 그룹에는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두 그룹의 이산화탄소 수준에 전혀 차이가 없었고 두 그룹 모두 그 어떤 조절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실험 결과 거짓 정보를 들은 그룹은 불안과 공황 증세를 명백히 적게 보였다. 비록 착각에 가까운 생각뿐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통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공포나 불안과 같은 심리상태뿐 아니라 신체의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준다. 요스 브로스홋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절대로 성공할 수 없게 설계된 3차원 퍼즐을 10분 정도 풀어보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 퍼즐을 푸는 과정에 대한 느낌을 다른 참여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게 한다. 이때 이 사람들의 설명을 분석하고 면역 기능을 측정하였다.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이지만, 많은 시도를 하면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조절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무리 해봐도 안 돼서 화가 나고 무력했다는 사람들에 비해 면역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B세포(항체를 분비하여 항원의 활성을 저해하는 도움세포)와 T세포(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도움세포)의 수치가 높았다. 결과적으로는 비록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신체 면역력이 증진되는 것이다.

올해 시작된 신종 인플루엔자는 우리 사회를 집단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사망자가 8명을 넘어가고 감염자는 1만 명을 넘었다. 이번 겨울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분명한 원인을 알지 못하고, 예방이 어렵고, 치료조차 불확실하다. 내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전염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신종인 만큼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을 수 있고 예방이나 치료 대책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신종이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 그 자체가 심리적인 공포와 불안을 가져온다. 더 나아가 우리의 면역체계를 떨어뜨려 결국 전염에 약하게 만들 수 있다.

막연한 공포가 면역력 저하시켜

물론 신종 플루의 위험을 무시하고 대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인 예방법과 치료법을 확실하게 숙지하고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그 생각이 신종 플루의 위험에 정말 나를 그대로 내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괜한 불안이나 공포감을 갖기보다 이런 상황을 통제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통제감과 자신감이라는 타미플루’가 필요한 것 같다.

곽금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심리학

kj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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