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4>남자들, 쓸쓸하다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코멘트
《필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류항으로 묶이면 서로 이해 못할 것이 없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든 남편과 아내의 관계든 간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만나야 할 지점은 인간의 자리이다. ‘거울 앞에 돌아온 내 누님 같은 꽃’이 되어 만날 때, 그 눈물겹고도 따뜻한 자리에서 만날 때 최종적으로 붙들어야 하는 이름은 인간뿐이다. -본문 중에서》

그리스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방랑생활 가운데 7년을 칼립소와 함께했다. 칼립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오기기아 섬에서 오디세우스와 영원을 함께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돌아누운 오디세우스의 등을 바라보며 그 쓸쓸함을 읽고 그를 페넬로페에게 떠나보낸다. 그렇다. 작가의 말처럼 돌아누운 모든 남자는 쓸쓸하다.

‘남자들, 쓸쓸하다’는 남자가 왜 쓸쓸해지는지를 고백하고 그 쓸쓸함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건너갈 여자들을 기다리며 쓴 에세이다. 얼핏 자전적 성격 때문에 작가의 연배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꼭 맞게 느껴질 듯하다. 여자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통쾌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화해라는 점에서, 또한 남녀의 구별이 없는 인간의 길로 눈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미 남녀와 노소의 경계는 없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에서 작가는 남자가 쓸쓸해진 이유를 엄살 부리듯 한바탕 늘어놓고 슬쩍 여자들에게 남자의 쓸쓸함을 떠넘긴다. 요컨대 남자의 쓸쓸함은 권력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권력을 뒷받침했던 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여자들은 그 역할을 손에서 놓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적어도 여자들이 남자를 권력자로 뒷받침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제 쓸쓸함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을 해야 할 텐데, 그것이 바로 두 번째 부분이다. 고대인이나 쉬운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 해결을 여신에게 기탁할 법도 하지만 작가는 여자들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들이 듣기에 서운한 말들을 자근자근 풀어놓는다.

이쯤 되면 원하지도 않던 권력을 누리다가 이제 그 권력을 잃고 쓸쓸해진 남자의 넋두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은 쓸쓸해진, 그래서 좀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남자의 눈으로 본 이 시대의 모습이다.

신이 사라졌을 때 이미 인간은 쓸쓸해졌다. 굳이 책 말미에서 작가가 히말라야를 찾고 카일라스를 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산 속이든 도시 속이든 사람들이 살고 이제 남은 것은 ‘너와 나’라는 실존뿐이다. 너와 나는 함께 손을 잡고 긴 시간의 강을 건너야 한다. 여기서 비로소 행간에 숨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부사 가운데 가장 웅숭깊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함께’라는 말이 아닐까? 남녀가 함께, 노소가 함께, 너와 함께, 그들이 함께, 우주가 함께. 남녀가 만나 함께 살면서 사랑가를 주고받던 춘향과 몽룡의 첫날밤처럼 늘 뜨거울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도 계절이 있어서 요즘처럼 가을이 오고 단풍이 물들고 잎이 지면 거리를 지나는 바람과 더불어 쓸쓸함도 찾아든다. 돌아누운 남자 또는 여자의 등을 보며 쓸쓸해하지 말고 가만히 몸을 움직여 서로를 보듬을 일이다. 그래서 ‘거울 앞에 돌아온 내 누님 같은 꽃’이 되어 서로의 이름을 부를 일이다.

이경덕 저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