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誤譯때문에 誤導된 국민상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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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말 콘서트’ 저자
이윤재 ‘말 콘서트’ 저자
번역은 서로 다른 문화들 간에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훌륭한 번역은 ‘source language(원문 언어)’와 ‘target language(번역 언어)’ 간의 조화이며 해당 2개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원 저자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틀린 번역이나 잘못된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대표적인 오류를 짚어본다.

우리는 ‘Art is long, life is short’를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고 옮기면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라고 덧붙인다. 의사는 예술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좀 이상하다. 이 말의 출처인 히포크라테스의 경구는 ‘The art is long, life is short, opportunity is fleeting, experiment is uncertain, judgment is difficult(의술은 길다, 생명은 짧다, 기회는 빨리 지나간다, 실험은 불확실하다, 판단은 어렵다)’이다. art가 예술을 의미할 때는 관사를 안 붙인다. ‘기술’을 뜻할 때는 the healing art(의술), the martial art(무술)처럼 the를 붙인다. the art를 의술로 옮기면 life 또한 생명으로 옮겨야 문맥이 맞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In married life, three is company, and two is none.(결혼생활에서 셋이면 잘 유지가 되는데 둘이면 깨진다.)” 흔히 ‘자식이 있으면 결혼생활이 유지되는데 부부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번역한다. 그러나 와일드는 ‘적당히 외도를 하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런 도피처가 없으면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의미로 말했다. 이 무슨 발칙한 농담인가?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에 나오는 이 대사는 결혼은 신성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풍자적으로 비꼬며 영국 빅토리아기의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역시 엉뚱한 의미로 변질된 것이다. 항상 자기과시가 남달랐던 쇼는 죽을 때까지 쾌활한 기지를 발휘해 줄곧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성깔과 강단이 있는 삶을 살았던 그가 ‘우물쭈물’ 운운하는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그는 19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고서는 노벨상을 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부인이 ‘아일랜드에 대한 경의’라며 간청하자 수상을 수락했다. 다만 상금은 기부했다.) 그는 25년간의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하기로 결심한 뒤 그 결심을 끝까지 지킨 독한 사람이기도 했다. 묘비명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으로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 머물 만큼 머물다 보면 이렇게 묻힐 줄을’로 번역해야 맞다. 삶은 무덤 근처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around는 전치부사로 다음에 ‘the tomb(무덤)’이 생략됐다.

10문장 272단어로 이뤄진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근대 정치 산문의 원조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로 끝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에 박은 듯 번역한다. 올바른 번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다. 문법에 통달한 링컨은 government가 ‘정치’(관념적 개념)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관사를 붙이지 않았다. shall은 ‘필연’이 아니라 ‘임무’를 나타낸다. 선행하는 구절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임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민주주의란 저절로 발전하는 ‘필연’이 아니라 헌신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윤재 ‘말 콘서트’ 저자
#번역#문화#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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