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착한 새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동화 속의 계모는 늘 악독했다. ‘콩쥐팥쥐’의 팥쥐 엄마, ‘신데렐라’의 계모는 자기 딸한테는 고운 옷을 입혀 잔치에 데려가고 전실 딸에게는 모진 일만 시켰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의 허씨는 장화에게 낙태를 했다는 누명을 씌워서, 홍련은 분에 못 이겨 죽게 했다.

▷실제로 1768년 영조 44년 전라도 강진에서 백필랑 필애 자매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계모 나씨의 구박 때문이라는 비난이 퍼져 결국 나씨는 처벌받았다. 그런데 1801년 이 사건 보고서를 접한 다산 정약용의 판단은 달랐다. “계모는 (무조건) 전처 자식들을 구박한다는 세상의 편견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신데렐라류(類)의 전설은 세계적으로 500건이 넘는다. 비정하지만 딸이 역경을 이겨내고 성숙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계모는 어머니의 또 다른 속성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여덟 살짜리 아이들을 학대해 죽게 한 계모들은 다른 해석이 필요 없을 것 같다. 24일 숨진 울산의 초등학교 2학년짜리 L 양에게 그날은 마침 소풍가는 날이었다. 계모는 “2000원을 훔쳐 가고도 거짓말을 한다”며 아침부터 L 양을 때렸다. 부검 결과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져 있었다. 두 달 전 서울에서 숨진 여덟 살 남자 아이는 병원에 다녀온 계모에게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친아버지와 계모는 안마기와 골프채로 수시로 아들을 폭행했다.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는 계모보다 친부가 훨씬 많이 저지른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2년 조사에서도 전체 6403건 중 친부 학대가 47.1%이고 친모 32.6%, 계모 2.4%, 계부 1.2%였다. 이런 사건은 재혼가정이 늘면서 전실 자식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쓰고 있을 수많은 착한 새엄마들을 슬프게 할 것 같다. 울산의 현장검증에서 이웃집 엄마들은 “몇 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애가 다리가 부러졌었다”며 울었고 분노했다. 아이만도 못한 어른은 부모라도 엄벌해야 한다. 전국 어디서든 아동학대 신고전화는 1577-1391.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