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노벨상 콤플렉스를 넘어 ‘패러다임 연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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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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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동물의 피부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 cell)를 최초로 얻어낸 공로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의 연구는 황우석 사태를 기억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황우석 박사는 2004년에 체세포복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그 다음 해에는 환자맞춤형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인간 난자의 과다한 사용과 배아의 파괴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있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황 박사는 1000개도 넘는 난자를 사용하고 줄기세포는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패러다임 연구 초기엔 주목 못받아

이 무렵 야마나카 교수도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2003년에 배아줄기세포에서 무한분열을 관장하는 ‘나노그(Nanog)’라는 마스터 유전자를 발견해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수정란을 봤을 때 두 딸의 얼굴을 떠올리고, 수정란을 파괴해야 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 연구의 방향을 성체줄기세포 쪽으로 바꾸었다. 몇 년간을 실험실에서 노력하다가 결국 쥐의 피부에 약간의 유전자조작을 가해서 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배아복제줄기세포의 윤리 논란을 피하면서 줄기세포의 혜택을 고스란히 이용할 가능성이 생겼으며,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의 연구를 2007년 최고의 의학 연구로 꼽았다. 이 무렵부터 그의 연구는 노벨상감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성체줄기세포는 만능세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연구자들은 배아줄기세포에 기대를 걸었다. 그렇지만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는 배아 파괴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야마나카 교수는 연구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윤리적인 이유에서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건 그는 성체만능줄기세포를 얻어내는 쪽으로 연구의 방향을 틀었고 결국 이것이 주효했다. 야마나카 교수의 업적이 나온 뒤로 성체만능줄기세포 분야가 급성장해서 2년간 1200편의 논문이 쏟아졌다.

야마나카 교수의 연구가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한 연구이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창안한 개념인 ‘패러다임’은 이전에는 해결되지 않던 난제를 해결하면서 다른 연구자들에게 풀어야 할 흥미로운 문제를 던지는 업적이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파생시킨 문제를 풀면서 연구를 확장한다. 그러다 보면 첫 ‘패러다임 연구’는 계속 인용되면서 인용지수가 몇천 회에 달하게 된다. 패러다임은 처음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10명 정도가 이에 관심을 가진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주제가 10년이 지나 1000명이 달라붙어서 연구하는 주제가 될 때 이 패러다임 연구를 낸 사람은 노벨상 후보가 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중에 합류한 1000명의 연구자는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다.

새 연구에 몰입할 환경과 지원 절실

매년 10월이 되면 신문지면에 노벨상에 대한 기사와 사설, 칼럼이 넘쳐난다.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받을까, 노벨상 아직 멀었다, 장기적인 지원 없이는 노벨상은 없다, 노벨상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유치하다, 이공계 위기부터 해결해야 한다 등등. 매년 들었던 비슷한 얘기가 또 어김없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런 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어떻게 패러다임 연구를 할 수 있었는지 아직 잘 모른다. 패러다임 연구는 그 당시에는 중요해 보이지도 않고, 인기도 없고, 지원을 받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인기도 없고, 비전도 없어 보이는 연구를 시작했는가? 이들은 어떻게 새로운 주제를 선점했는가? 누가 이들의 연구를 지원했는가? 이들은 어떻게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고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했는가?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 이런 패러다임 연구를 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과학자의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다른 나라 과학자에 비해 원천적으로 부족할 리가 없다. 부족한 것은 젊고 유능하고 야심 찬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 덜 주목을 받지만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연구에 몰입할 제도적인 조건과 지원이다. 이렇게 붙잡은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할 수 있는 지원도 부족하다. 단기적이고 계량적 평가가 이런 가능성을 죽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8년 녹색형광물질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일본의 시모무라 오사무는 일본 나고야대에서 발광 단백질 루시페린의 결정화로 박사학위를 받고 32세에 도미해 미국 우즈홀 연구소에서 매년 여름 근처 바다에서 해파리를 잡으면서 홀로 녹색형광물질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19년 동안 80만 마리의 해파리를 잡았다.

이제 노벨상 콤플렉스를 벗어나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이런 패러다임 연구를 낼 조건과 지원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노벨상#콤플렉스#패러다임 연구#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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