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권력자의 오만과 권력의 타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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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권력은 썩는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썩는다.” 1887년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 경이 남긴 말이다.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가슴에도 와 닿는 걸 보면 과연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진리인 모양이다. 정권 말기 때마다 예외 없이 터져 나오는 소위 권력형 비리를 보면서 느끼는 소회다. 그런데 권력은 도대체 왜 썩는가. 권력의 논리와 인간의 심리 때문이다.

정치학의 표준정의에 따르면 권력이란 ‘남’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따르도록 하는 그 무엇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권력자 앞에서 사람들은 공연한 기대에 들뜨고 막연한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한다. 우습지 않은데 웃기도 하고 슬프지 않은데 울기도 한다. 그게 권력의 효과다.

권력을 가진 자는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없는 자는 괴롭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투키디데스의 기록처럼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웃으면서) 하고 약자는 해야 하는 일을 (울면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그 같은 권력은 어디에서 유래되는가. 남에게 이득이나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력이나 폭력, 그리고 권좌(權座)가 주는 (좁은 의미의) 권력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기대에 들뜨고 두려움에 떨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고통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폭력은 효과가 없다. 드물지만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 재력은 효과가 없다.

자기도취-오만 때문에 권력 단명


그처럼 대단하지 않은 보통 사람도 폭력과 금력에 마냥 굴복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겁이 나고 탐이 나서 행동한다면 삶이 너무 비참하다. 그 비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마지못해 복종하기보다 자발적으로 복종하려고 한다. 권력자 개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권력자가 정통성이 있는 제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다.

권력자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겁이 나고 탐이 나서 따른다면 그 권력은 너무 야비하다. 그래서 이데올로기, 종교, 우상화 등을 통해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고자 한다. 그래야 그 권력이 오래간다. 두려움에 의존한 진시황의 법가(法家), 힘에 의존한 항우의 패도(覇道)는 성공하지 못했다. 유가(儒家)의 왕도(王道)를 제도화한 한나라는 400년 지속됐다. 소프트파워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그 같은 권력의 논리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제도화한 권력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왕조는 단명했다. 권력자를 ‘나의 대리인’으로 생각하도록 한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면에서 정말 탁월한 제도다.

권력이 부패하고 그래서 단명으로 끝나는 이유는 모든 권력자가 거의 예외 없이 빠지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와 오만, 바로 그리스어에서 온 ‘휴브리스(hubris)’가 그것이다. 여기에도 묘한 인간의 심리가 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권력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마키아벨리는 능력과 운이 성공의 두 요소라고 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하지만 내심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러워한다. 성공이 거듭되면 운은 잊고 능력만 기억한다. 운은 능력에 따라오는 부속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어쩌다 실패하면 능력의 부족이나 운을 탓하지 않고 남을 탓한다.

이쯤 되면 남들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존경하고 따른다고 믿게 된다. 주변에 모이는 사람이 탐심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존경 때문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누리는 특권은 누가 봐도 당연하다고 믿는다. 그것을 문제 삼으면 못난 사람의 사악한 질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는다.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권력을 잡게 되면 그런 경향이 더하다. 얼떨결에 완장 찬 사람의 행태가 그렇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행태가 그랬다. 정권 초기 정권인수위원회의 행태가 그렇다. 소위 ‘점령군’의 행태다.

국민은 ‘설치는 정치인’ 두고 못봐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그들의 행동이 점령군 같다. 4년 동안 무기력하다가 전당대회에서 80만 명의 모바일 투표를 동원하고 갑자기 높은 지지율을 누리게 된 야당의 기고만장한 행태도 그렇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궁극적 주체는 국민이다. 그들은 위임받은 권력으로 설치는 정치인을 두고 보지 못한다. 중간 선거나 재·보선에서 여당이 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겹친다. 총선에서 이긴 정당이 대선에서 패할 소지가 높다. 그들이 휴브리스를 극복한다면 모르지만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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