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ISD가 사법주권을 침해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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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법원까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논쟁에 빠졌다. 반(反)자유무역협정(FTA) 진영은 외국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이 아닌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하는 것이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퍼뜨려 왔다. 이런 논리가 자존심 강한 우리 판사들을 자극했으리라. 반면 콧대 높은 미국 판사들은 잠잠하다.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투자기업들도 ISD를 활용할 수 있어 미국의 사법주권이 침해당할 텐데도 말이다.

국제중재 존재 이유 부인하는 것

우리 정부가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 지적재산권 교역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반하는 규제를 하면 WTO패널에 제소될 수 있다. 이 패널도 분쟁 당사국 합의로 설치하는 것이고 패널위원도 합의 임명하므로 국제중재에 해당한다. ISD 반대 논리에 따르면 WTO 절차도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에 따르면 WTO협정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를 위반한 정부 조치에 대해 피해 수출업자들이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마땅한데, WTO협정은 중재패널을 거치도록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가 미국인에 대해 조약이나 관습법에 반해 피해를 준 경우 피해자는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면 미국정부는 외교보호권을 행사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ISD 반대 논리로 보면 이것은 더더욱 사법주권을 침해한다. 국내 재판에서 해당 청구를 기각했는데도 국제재판으로 가 승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ISD가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결국 모든 국제중재·재판제도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다. 조약이란 기본적으로 국가 간 합의를 통해 주권기능 중 일부를 스스로 제약하는 전제 아래서 출발한다. 그래야 국제법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국제분쟁을 국제중재 절차에서 해결한 것은 과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지닌 보편적인 것이다.

수많은 인권협약은 국제인권보장기구에 개인이 직접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는 것을 허용한다. 심지어 자국 정부를 상대로 한 제소도 가능하다. 이것은 국제인권보호를 위해 국가의 관여 없이 피해자가 국제기구에 청원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헌장상의 사용자나 노동자 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진정제도, WTO 선적전검사협정에 따라 수출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진정제도 등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국제투자 분야에서도 투자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단순한 상품, 서비스 거래와 달리 투자는 생소한 환경인 해외에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는 일인 만큼 투자 위험이 수반된다. 부당한 정부 규제에 직면한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그 국내법원에서만 소송을 하자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고 관할권이 없는 투자자 본국 법원에 제소할 수도 없다. 물론 투자자의 본국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국제재판에 제소할 수 있으나 본국 정부가 제소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손해를 배상받을 길이 없다.

법관 ‘밥그릇 싸움’ 같아 씁쓸

이런 점을 고려해 투자자가 직접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만큼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어 국제투자 활성화에 기여하게 된다. 전 세계 2600여 개 투자협정과 수많은 FTA에 ISD가 대부분 도입돼 있는 현실은 이런 이유를 반영한다.

또한 ISD가 있더라도 국내법원 절차가 반드시 생략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가 국내법원과 ISD 절차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ISD가 사법주권을 침해하기에 독소조항이라는 왜곡된 주장에 상당수 법관이 동조하는 현실은 또 다른 ‘밥그릇 싸움’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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