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이 시구… 자폐아 ‘힘찬 스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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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후원한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 아동들과 잠실구장 첫 나들이

“민성아 멋지게 쳐봐”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김민성 군(왼쪽)이 시타자로 나서 45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선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민성아 멋지게 쳐봐”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김민성 군(왼쪽)이 시타자로 나서 45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선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자,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이진영 선수처럼 멋지게 쳐 보렴.”

1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잠실야구장. 김민성 군(14)은 천천히 날아오는 ‘아리랑 볼’을 향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헛스윙. 어깨를 들썩이며 아쉬워하던 김 군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투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김 군은 자폐증(심리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내면세계에 빠져있는 증세)을 앓고 있다. 김 군과 똑같은 옷에 똑같은 모자를 쓴 채 시구를 한 투수는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59)이었다.

이날 서울고법 소속 판사와 직원 50여 명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소속 자폐아동 및 보호자 50여 명과 함께 프로야구 LG와 SK의 경기를 관람했다. 서울고법 측이 평소 운동경기 관람 기회가 적은 자폐아동들에게 선물로 준비한 행사였다. 조 법원장은 2005년부터 9년 동안 이 협회를 남몰래 후원해왔다.

김 군은 평소 공놀이를 좋아했지만 야구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부모는 남보다 신경이 예민한 아들이 시끄러운 응원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걱정돼 야구장에 데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김 군이 초록빛 그라운드에서 ‘시타’까지 하고 돌아오자 김 군의 어머니는 대견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야구장 대형 전광판에 김 군의 모습이 나오자 자폐인사랑협회 아동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날 김 군 등 자폐아동 20여 명은 야구팬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즐겁게 경기를 지켜봤다. LG 선수들이 안타를 치거나 볼넷으로 진루하면 막대풍선을 힘껏 부딪치며 응원했다. 등장 선수의 테마곡이 나오면 리듬에 맞춰 고개를 연신 흔들기도 했다. 경기는 4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김 군 등은 한시도 그라운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경기 초반 잠잠하던 LG 선수들의 방망이도 아이들의 응원에 화답하듯 불을 뿜기 시작했다. 3번 타자 이진영이 3연타석 홈런을 친 데 이어 오지환이 9-9로 맞선 연장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날리자 자폐아동들은 환호했다.

김 군의 아버지 김기호 씨(47)는 “아들 같은 자폐아동들이 야구장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쁘다. 이날 응원하는 LG가 경기까지 이겨 온 가족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원래 이번 행사는 4월 25일 ‘법의 날’에 치를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로 미뤄졌다. 이날 시구를 한 조 법원장의 등번호도 법의 날을 의미하는 ‘425번’이었다. 조 법원장은 “힘차게 응원하는 아이들을 보니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와 장애를 넘어) 함께 응원하고 기쁨을 나누는 스포츠처럼 법원도 공감하고 감동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조병현#서울고등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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