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기정]중국은 100년, 한국은 5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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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대만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상아로 만든 공이 있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청나라 건륭제 때 만든 노리개다. 통상아를 겉에서부터 깎아 17개의 공을 겹쳐 만든 형태다. 현대의 절삭공구로도 완성하기 어렵다. 미적 완성도에도 놀라지만 당시 장인이 3대에 걸쳐 만들었다는 데서 더 놀란다. 100년간 깎았다는 얘기다. 중국을 대할 때마다 종종 질려버리는 건 그들 특유의 시간 개념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내건 구호는 ‘두 개의 100년 계획’이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까지는 전면적 샤오캉 사회(비교적 잘사는 사회)를 실현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2049년)까지 부강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100년이라는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하는 건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라서 장기 국가계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정치국 상무위원이 갑자기 행방불명됐다가 뒤늦게 재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가와 정권을 구별한다. 과거 정권의 성취는 국가에 남아 있고 새 정권은 그 유산 위에서 유훈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정권 교체가 권력 간 이동이라기보다 전임 권력의 배에서 후임 권력이 잉태돼 출산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한국 담당자들을 만났다. 여러 주제가 오갔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그들의 결론은 “한국 정부의 방향을 모르겠다”였다. 우리가 전술적 모호함을 택해서가 아니라 상당수 정책이 그들의 기준으로는 조변석개한다는 평가였다.

중국을 떠올린 건 최근 정부가 부쩍 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2일 신년사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강조했다. 집권 3년 차에 대통령이 가시적 성과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숙제를 넘겨받은 정부가 자칫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처리한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를 보자. 자영업자들이 카드 수수료를 깎아 달라고 요구한 근본 원인은 동네 떡볶이집에서도 카드를 받아야 해서다. 한국의 카드 결제 비중은 전체 소비의 80%에 이른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계 자영업자들은 매출의 2%대인 카드 수수료도 버겁다. 최저임금 이슈가 부담스러웠던 정부와 여당은 화끈하게 수수료를 낮췄다. 그 부담은 민간 기업인 카드사가 지게 됐다.

사실 신용카드 문화는 아주 세련되고 장기적인 정책 접근의 결과다. 카드를 많이 쓰면 연말에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가 도입된 게 1999년이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자영업자의 과표를 양성화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 취지였다. 세원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소비 방식 변화를 유도해냈다.

수수료 문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의 소비자 수용성이 워낙 좋다 보니 생긴 결과다. 그렇다면 해법도 카드 사용의 접근성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소득공제 대상에서 매출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업장에서 결제한 내역을 제외해 소비자들이 카드 결제로 얻는 이익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카드 결제를 거부할 권리를 특정 사업장에 주는 방안도 논의할 만하다. 물론 이런 식의 대안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기도 없다. 즉각 체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보완 방안이 추가돼야 해서다. 그럼에도 정권을 넘어 길게 보고 멀리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시진핑#중국 공산당#문재인#신용카드 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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