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교황 방북 초청도 ‘아니면 말고’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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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대리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교황의 모든 방문은 司牧방문… 사목방문은 교회가 전제돼야 하나
북한엔 상주 사제 없어 전제 불충족… 교황 訪北은 프로토콜상 불가능”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김대중 정부가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추진할 당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우일 주교(현 제주교구장)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교황 방문은 해당국에서의 교회의 존재를 전제한다. 교회에는 신자와 사제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 교회에는 신자만 있고 사제가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실제 방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들은 바로는 내년 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신다”고 말한 그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정세덕 신부와 통화했다.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대리를 겸임하고 있고 교황이 방북하면 서울대교구장이 평양에 가서 교황을 맞아야 한다. 교황이 방북을 고려한다면 그 조건을 검토하는 임무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몫이다. 정 신부는 교황의 방북 조건에 대한 검토도, 검토에 대한 주문도 없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교황 방문의 전제조건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교황의 모든 방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목 방문(pastoral visit)이다. 북한에는 사제도 없고 수도자도 없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처음 평양교구장 대리를 맡은 김수환 추기경 이후 정진석 추기경, 또 현재 염수정 추기경까지 누구도 북한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이뤄지는 교회가 있다고 확인한 적이 없다.”

―이 대표가 한 말은 뭔가.

“정치적 입장에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제조건은 안 되지만 교황이 예외적으로 방북할 순 없나.

“북한 정권이 매우 전향적으로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고 보장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교황이 방북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그런 의미 없는 방북은 교황이 하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중국 방문을 오래전부터 희망해왔다. 최근 중국 정부와 주교 임명에 대해 타협도 했다. 내년쯤 중국을 방문한다면 북한을 함께 방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의 독자적 주교 임명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해서 중국 교회를 온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다. 교황의 방문을 위해서는 최소한 선교와 사목 활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데, 중국 교회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북한에는 그나마 중국 수준의 교회도 없다.”

―일반 언론은 교황 방북 추진을 떠들썩하게 전하는데 가톨릭 언론은 왜 이리 조용한가.

“교황 방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침묵으로 전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김정은의 방북 초청을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이 초청에 응하는 것이 교황의 프로토콜상 어렵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았다면 문 대통령이 교황을 알현한 뒤 김정은의 방북 초청 사실과 교황의 답변을 함께 전해야지, 평양회담 직후도 아니고 유럽 순방 직전에 뒤늦게 김정은의 제의를 떠들썩하게 밝힌 연유는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교황 방북의 특별한 조건을 과연 알아보기나 한 것인지 의문까지 든다. 이유가 없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해에도 가톨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 청와대를 향한 낙태 청원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과 다른 답변을 했다가 천주교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결국 사과했다. 천주교가 그 속의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드물게 일치하는 의제가 낙태 반대임을 알았다면 그런 엉뚱한 답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과 1983년 조국 폴란드를 방문하고 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은 동유럽 국가에는 공산 치하에서도 진정한 교회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을 결정한다면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도 그런 축복을 끌어내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 데 대해 칭송을 받아야 한다.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진정한 교회가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내가 창피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란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비핵화보다 더 허용하기 어려운 것이 신앙의 자유다. 신앙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교황 방문#사목 방문#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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