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대별왕과 소별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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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장군(火德將軍·불신)을 묘사한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화덕장군(火德將軍·불신)을 묘사한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천지왕본풀이’는 우주와 인간 세계의 창조를 다룬, 제주도의 대표적 창세신화 중 하나다. 최초의 하늘에는 해도 두 개, 달도 두 개가 떠있었다. 그로 인해 인간들은 낮에는 뜨거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었다. 어느 날 하늘나라 천지왕이 해도 하나 달도 하나 먹는 꿈을 꾸었다. 인간들의 고난을 해결해줄 태몽이었다. 천지왕은 곧장 지상의 총맹부인에게 천정배필을 맺으러 내려갔다. 그러나 총맹부인은 천지왕을 대접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저녁 지을 쌀조차 없었던 것이다. 총맹부인은 하는 수 없이 수명장자 집에 가서 쌀 한 되를 꿔와 진짓상을 마련했다.

어디에나 악인은 있기 마련이다. 수명장자가 그랬다. 총맹부인에게 쌀 한 되를 주되 그냥 주지 않고 흰모래를 섞어 주었던 것이다. 천지왕은 첫 숟가락에 모래알을 씹었다. “총맹부인아, 어떤 일로 첫 숟가락에 모래알이 씹힙니까?” 총맹부인은 ‘첫 숟가락에 모래가 씹힌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괘씸하구나.” 총맹부인은 내친김에 수명장자뿐만 아니라 그 아들딸들의 악행까지도 아뢰었다. “괘씸하고 괘씸하구나. 벼락장군 벼락사자 내보내라. 우레장군 우레사자 내보내라. 화덕진군 화덕장군 내보내라.” 천지왕의 명을 받은 장군과 사자들은 수명장자 집에 가서 불을 질렀다. 천지왕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수명장자 딸들은 자루 부러진 숟가락을 항문에 찔러 팥벌레로 변신시키고, 아들들은 솔개로 환생시켜라.”

이렇게 수명장자를 일거에 징치한 천지왕은 합궁일을 받아 총맹부인과 천정배필을 맺고서 말했다. “아들 형제를 둘 것이니 태어나거든 큰아들은 대별왕, 작은 아들은 소별왕으로 이름을 지어두라.” 그러고서 증거라도 두고 가라는 총맹부인의 말에 박씨 두 개와 얼레빗 한 짝을 주고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 후 총맹부인은 과연 임신하여 아들 형제를 낳았다. 그런데 형제가 한 살 두 살 먹어 어느새 열다섯이 되어 서당에 글공부를 다닐 때였다. 동료들이 아비 없는 호래자식들이라며 수군거렸다. “아버지를 찾아주십시오.” 화가 난 형제는 어머니를 닦달했다. “너희 아버지는 하늘나라 천지왕이시다.” 형제는 어머니한테서 받은 박씨를 심어 싹이 나고 줄기가 뻗어나가자 이 가지 저 가지 밟아가며 하늘나라로 올라가 얼레빗 한 짝을 천지왕에게 내밀었다. “내 아들이 분명하다!” 천지왕은 곧바로 형제에게 천 근 무쇠화살과 활 두 개를 내주어 해도 한 개 달도 한 개를 쏴서 없애도록 했다. 그러고는 다시 명령했다. “인간들의 고통을 해결했으니, 이제는 이승과 저승을 차지하여 나아가라.” 그러자 소별왕은 수수께끼 내기를 해서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자가 저승을 차지하자고 형에게 제안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러나 소별왕은 첫 번째, 두 번째 수수께끼 내기를 모두 지고 말았다.

소별왕은 마지막으로 꽃 피우기 내기를 제안했다. “형님, 잠을 오래도록 잔 후에도 누구의 꽃이 계속해서 번성하고 시드는지 보는 내기를 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자.” 소별왕은 자는 척하고 있다가 형이 잠들자 형의 번성한 꽃을 자기 쪽으로 당겨놓고 자신의 시든 꽃은 형 앞쪽에 놓아두었다. “불쌍한 아우야. 네가 이승을 차지해도 좋지만, 인간 세상에는 살인 역적 도둑이 많을 것이다.” 잠에서 깨어 동생의 간사한 마음을 알아챈 대별왕은 악담을 퍼붓고는 저승으로 떠나갔다. 형제간에 주고받은 악행과 악담. 과연 그들은 인간이 좋았던 걸까, 그 세상이 좋았던 걸까.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대별왕#소별왕#천지왕본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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