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혈세 빼먹은 자원개발 수사 ‘표적’ 뒷말 안 나오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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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해외자원 개발 비리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배후에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해외자원 개발에 나섰던 경남기업은 정부로부터 350억 원 이상의 성공불융자를 받았다. 성공불융자는 정부가 해외자원을 개발하는 업체에 빌려주는 돈으로 개발에 성공하면 갚고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 기업으로선 아무런 위험 부담이 없는 특혜나 다름없다. 경남기업이 받았던 성공불융자 가운데 수십억 원이 성완종 회장의 가족 명의 계좌로 빼돌려진 혐의가 드러났다.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자문위원을 했고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친분이 두텁다.

한국가스공사와 SK이노베이션도 수백억 원부터 수천억 원까지 성공불융자를 받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에서 석유광구 탐사를 했으나 성과는 거의 없었다. 이 기업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투자했으나 실패했다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해외자원 개발사업을 빙자해 국민 세금으로 엉뚱한 사람의 배를 불렸다면 범죄 행위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기업들이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 뿌린 돈은 31조 원을 넘는다. 큰돈이 오가는 사업에서 검은 뒷거래가 이뤄지고 일부가 정치 자금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가의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해외자원 개발 사업을 이용해 사욕을 채운 행위는 철저히 파헤쳐 엄벌해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작년에는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내사만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검찰이 일해도 되는 상황이 됐다”며 비리에 대해 고강도 수사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의 대부분이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된 역점 사업과 관련돼 있고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및 이상득 전 의원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황 장관은 어제 “내가 아는 한 표적수사는 없다”고 했지만 상시적으로 해야 할 부정부패 척결을 소나기처럼 특정 시기에 몰아서 밀린 숙제 하듯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자초하는 일이다.

해외자원 개발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기 어렵고 성공할 확률도 낮은 사업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묻는다면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자원 개발의 정책적 경영적 판단까지 ‘먼지 털이 식’ 수사로 여론 재판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의 혈세를 낭비하고 공기업을 멍들게 한 횡령과 비리는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검찰이 치밀하고 정확한 수사로 증거에 입각한 비리를 밝혀내는 것만이 ‘정략적 수사’ 논란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혈세#자원개발#수사#표적#비리#에너지 안보#해외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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