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집 나간 명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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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시인 양명문이 가곡 ‘명태’를 쓰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겠지만 이제 정말로 명태는 이름만 남게 된 것 같다.

▷1980년대만 해도 연간 어획량이 7만4000t이나 되던 명태는 가난한 시인의 안줏감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해수온난화와 남획으로 1990년대 6000t으로 어획량이 급감했고 2007년 이후 연간 1∼2t에 불과할 정도로 씨가 말랐다. 그 흔하던 생태찌개 식당은 전멸했다. 급기야 해양수산부가 ‘집 나간 명태를 찾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집 나간 명태’ 프로젝트는 명태 수정란으로 치어를 생산해 동해에 방류하는 것이다. 명태는 대표적인 한류 어종이다. 치어를 생산하려면 배양시기에 해수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지만 더 급한 것은 명태 수정란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수부는 살아 있는 명태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최고 50만 원의 사례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러시아나 일본으로부터 수정란을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한다.

▷산 명태에 포상금을 걸 정도가 됐다는 건 한반도 해역의 온난화가 얼마나 심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명태뿐 아니다. 미묘한 기후변화도 동식물에겐 큰 영향을 미친다. 제임스 쿡 대학 스티브 윌리엄스 교수는 방대한 야생동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1도만 상승해도 65종의 생물 가운데 63종이 서식환경의 3분의 1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귀중한 생물자원의 가치를 인식하고, 생물자원 이용과 관련해 국가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12차 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가 9월 평창에서 열린다. 집 나간 명태가 돌아와 국제사회에 생물다양성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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