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료마전’과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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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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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중요한 근현대사 사건들의 10년 주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는 개항 150년이 되는 해였고 올해는 한국 강제병합 100년, 내년에는 태평양전쟁 발발 70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0년을 잇달아 맞는다. 한국이 올해 국치(國恥) 100년, 6·25전쟁 60년, 4·19혁명 50년, 5월항쟁 30년을 맞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해 건국 60년을 경축했다. 일본과 중국의 근현대사 사건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세 나라가 역사적으로도 깊이 얽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격변기에 국가 방향 제시한 드라마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이와 관련한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그중에서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과 ‘료마전(傳)’이 돋보인다. 소설가 시바 료타로 원작(原作)의 ‘언덕 위의 구름’은 1904년 러일전쟁에 참전해 공훈을 세운 아키야마 형제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해 말 1부를 내보냈고 올해 말과 내년 말 등 모두 세 차례로 나뉘어 방영되는 점이 특이하다. ‘료마전’은 올해 초부터 방영되고 있는 48부작 드라마로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 사카모토 료마를 그리고 있다.

NHK가 어떤 의도에서 드라마를 만들었는지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언덕 위의 구름’에 나오는 아키야마 형제 가운데 형은 러일전쟁에 육군으로 나서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던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에 맞섰다. 해군 장교인 동생은 무적함대로 꼽히던 발트함대에 승리를 거뒀다. ‘료마전’의 사카모토 료마는 19세기 후반 서양의 개국(開國) 압박 속에서 사분오열되어 있던 일본을 결집하고 메이지 유신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두 드라마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일본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공로자들을 집중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국영방송인 중국중앙(CC)TV는 건국 60년 기념으로 드라마 ‘공자’를 곧 방영한다는 소식이 나온다. 문화혁명 시기에 홍위병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던 공자는 몇년 전부터 중국 정부에 의해 재조명되기 시작하더니 최근 중국 사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드라마 ‘공자’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30부작으로 ‘공자 복권(復權) 프로젝트’의 정점에 있다. CCTV는 이 드라마에 한국 가수 이정현 등 외국 연기자들을 출연시키면서 공자를 해외에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매체들이 ‘공자 띄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빈부격차와 같은 새로운 사회 문제에 대한 내부적 해법 제시라는 측면 이외에도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들이 중국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널리 알려 문화적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다. 어떤 의도이든 드라마 ‘공자’는 세계의 권력구조가 급변하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한국 공영방송의 지리멸렬

한국 공영방송이 올해 기획한 프로그램 가운데 ‘료마전’과 ‘공자’에 비교될 만한 드라마로는 6·25전쟁을 다룬 ‘전우’(KBS)가 있다. 1970년대 방영됐던 같은 이름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다는 이 작품을 놓고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반공(反共) 드라마’라고 공격하고 있다.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한 6·25를 그리면서 어떻게 반공 드라마가 아닌 다른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KBS가 일부의 ‘태클’ 속에서 당초 의도했던 대로 드라마를 끌고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료마전’과 ‘공자’는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시청이 가능한 시대다. 이들 드라마가 한중일 삼국의 또 다른 ‘문화전쟁’이자 ‘역사전쟁’이라고 볼 때 우리는 기획의 스케일이나 창의성, 준비성 면에서 한참 뒤져 있다. 이렇게 지리멸렬한 모습으로는 다시 시작된 한중일의 치열한 국력 싸움에서 승자가 되기 어렵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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