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6>고요한 돈강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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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옛 소련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가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럼에도 그의 걸작 대하소설인 ‘고요한 돈강’(1928∼1940)을 구해 보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그동안 이 작품은 한국의 독자들과 격리되어 왔다. 소련 문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서구도 1965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함으로써 이 작품을 뒤늦게 추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반공 체제를 견지한 한국에서는 단지 풍문으로만 떠돌 뿐이었다. 출판의 자유가 그래도 너그러웠던 1949년 현덕(玄德) 선생에 의해 제1부가 번역돼 대학출판사에서 나왔지만 6·25전쟁 이후 망각됐다. 7권짜리의 완역본은 1985년에야 일월서각에서 빛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은 출판 운동의 열매로 비로소 한국 독자들에게 온전히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유럽 혁명의 물결 속에서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 작품은 다시 빛을 잃게 되는 반어적 상황을 맞이했던 터이다. 과연 이 작품은 ‘소비에트연방’의 부침(浮沈)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이데올로기 소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 카자흐 마을 타타르스크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마감될 만큼 돈 카자흐의 집합적 생태를 생동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카자흐의 야생적 자태를 처음으로 호명한 니콜라이 고골리(1809∼1852)의 ‘타라스 불리바’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카자흐 최고의 종족지(種族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숄로호프는 돈 카자흐의 역사적 운명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러시아혁명(1917), 그리고 내전(1918∼1920)이라는 세계사적 격동의 터널을 통해서 조명함으로써 종족지적 풍요에 서사시적 위엄을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러시아혁명을 돈 카자흐의 눈으로 보듯이 작가는 돈 카자흐의 운명을 주인공 그리고리 멜레호프를 통해서 본다. 그리고리는 부단히 요동한다. 혁명 직후 적위군에 가담한 그는 부상을 하고 귀향한 뒤에는 백군에 가담한다. 그러다가 적위군에 붙잡힌 뒤에는 다시 적위군에 복무한다. 제대 후에 귀향한 그는 다시 탈출하여 이제는 비적으로 전락한 카자흐 백군의 잔당에 몸을 부치다가 운명의 여인 악시냐와 만난다. 그는 악시냐와 먼 탈출을 꾀하다가 그녀가 적위군의 총에 맞아 죽자 모든 희망을 잃고 마침내 은신처에서 나와 황폐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이 허망한 결말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반혁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알다시피 카자흐는 종족이 아니라 옛 영지에서 러시아 남부의 광대한 스텝지대로 탈출한 농노들의 집단이다. 그런데 농민 전쟁의 영웅 스텐카 라진과 에멜랸 푸가초프의 후예인 그들이 내전에서는 대거 반혁명에 가담하였다.

여기에 러시아혁명의 한계가 노출된다. 혁명에 대오를 함께했던 농민들이 혁명 이후에 실망하여 반혁명으로 돌아서는 한 경향을 상징한 사건이 혁명에 열광한 최후의 농민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의 자살이다.

이 점에서 그리고리의 운명의 변전은 그 반영일 터이다. 작가는 카자흐에서 농민적 저항의 표상을 발견함으로써 불굴의 자유를 구가한 돈 카자흐, 이 고상한 야만인들의 멸망에 대한 충심의 만가를 헌정한다. 숄로호프는 이미 러시아혁명의 파국을 내다본 것인가?

최원식 인하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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