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예술 행위」할까?…본능에 따른 몸놀림일뿐

  • 입력 1999년 2월 4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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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은 매우 서정적입니다. 정제된 간결한 터치가 믿기 힘들 만큼 우아하고 섬세합니다. 감동을 느끼게 하는군요.”

미국 시라큐스대학 제롬 위트킨(미술학과)교수는 그림 몇 폭을 보면서 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동양의 서예에 관심이 깊은 여성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화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의 한 동물원에 살고 있는 ‘시리’라는 이름의 동남아시아산 암코끼리가 그림을 그린 ‘화가’. 위트킨교수가 감상한 작품들은 신장 2m40㎝에 몸무게 4t의 코끼리가 코에 붓을 끼워 그린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위트킨교수는 “정말 재능이 많은 코끼리”라고 감탄했지만 동물원 직원들은 “시리는 평범한 코끼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동물원의 ‘루비’라는 코끼리 역시 수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루비의 작품은 동물원 운영기금 모금행사에서 무려 6백50달러에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앞선 1940년대 영국 화단에는 콩고와 베스티란 추상화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채 오직 작품으로만 인정을 받았다. 이들의 작품들은 나오는 즉시 전시회에서 전부 팔릴 정도로 인기도 좋았다.

그러나 콩고와 베스티는 실제로는 침팬지들이었다. 콩고는 붓 분필 크레용 연필 등 다양한 도구와 손가락을 이용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전개해 많게는 하루 33개까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70년대초 시카고 아트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해 등단한 준이라는 침팬지 화가는 현재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리의 한 동물원에서는 이따금 펼쳐지는 홍학의 그룹댄싱이 화제다. 돗자리를 깔고 무대를 만든 뒤에 가지런하게 줄을 맞춘 상태에서 춤을 추기 때문에 애니매이션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포유류 뿐 아니라 상당수 야생조류가 노래를 부르고 일부 야생동물들은 멋드러진 춤까지 추는 모습이 여러차례 관측됐다.

그렇다면 동물들도 과연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예술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속성중 하나로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 기준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시리와 루비, 콩고와 베스티의 예를 보면 동물도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은 깨져야 한다.

학자들은 이같은 결론에 대해 “동물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고 단언하면서 몇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침팬지나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간이 붓과 물감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스스로의 의지로 창작활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인간의 예술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에서 비롯돼 쓸모는 없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동물은 대개 ‘실용적’인 이유에서 ‘예술’을 한다. 홍학이 춤을 추는 이유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고 코끼리는 붓이 없어도 코를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예술본능은 유전보다는 학습에 의해 이뤄지는데 동물은 다른 동물에게 예술을 가르쳐줄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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