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여성시대]승진하고 싶다고요? ‘뒷담화’를 이겨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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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편<2>여자들이 말하는 여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남자들은 “여자들과 일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여자들도 할 말이 많다. 특히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남자들에게 배어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관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공정한 평가가 여성들을 일하게 한다

대기업 건설업체 과장인 A(38·여)는 요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여직원들이 희소한 업종에서 명문대 출신으로 입사 초기 깔끔한 일처리와 유창한 어학실력으로 동기생들에 비해 대리 승진도 빨리 했다. “일 욕심이 많았다”는 A는 “여자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업무수행은 물론이고 사내 네트워크를 위해 회식이나 외부 접대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그에게는 오랜 꿈이 있었는데 바로 해외근무였다. 그런데 몇 달 전 지원한 해외근무에서 이른바 ‘물’을 먹었다.

“그동안 남자들만의 영역이었던 국내외 출장도 자원해서 다녀오고 남자들이 기피하는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편이라 스스로 여성의 한계를 깨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일 때 사내 선후배들이 ‘여자니까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전해 들으면서 좌절감이 들었다.”

A는 “물론 내가 떨어진 데에는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자였다면 떨어졌을까? 막상 이런 일을 겪으니 능력은 있는데 승진 등에서 물을 먹으며 좌절해온 여자 선배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조직 내에서의 내 미래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도 안 하고 일에 몰두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한국 여성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일 잘한다는 평판을 듣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은 높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입사했다가도 중간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남자가 대다수인 기업문화에서 아직도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남자 과장 B(36)는 “남녀 문제는 인종 문제처럼 결국 소수와 다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며 “아직은 여성들이 회사 내 의사결정 과정의 주류로 편입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힘이 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들의 경우 최고경영자(CEO)까지 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부하직원들도 절대적으로 충성하거나 ‘여성 상사’를 도와주며 줄을 서려는 경우가 별로 없다. 회사생활도 사내(社內) 정치가 중요한데 부하 입장에서 (여자라는) ‘아닌 줄’을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여자들 스스로 조직 내 경쟁자인 남자들보다 승진이나 진급에 대한 동기부여가 낮다. 2012년 여성리더십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은 60%가 입사 때부터 임원 이상을 승진 목표로 삼지만 여자는 40%로 떨어진다. ‘승진 목표를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문항에도 “예”라고 답한 여성이 33%로 남성(21%)보다 높았다. ‘현재 성취 가능한 승진 목표’를 남성은 55%가 “임원 이상”이라고 답한 반면 여자는 25%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성취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승진 목표는 부장(23%) 직급이 가장 많았으며 현재 여성 임원의 절반(51%)은 현 직급에서 더는 승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여성들은 애초부터 꿈도 크게 갖지 않은 데다 기껏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은 ‘임원’까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여자들만의 문제일까. 연구원이 조사한 회사들 중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성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는 조직’이라고 인식되는 회사에서는 “임원을 꿈꾼다”고 답한 여성들이 직급이 올라갈수록 늘어난 것. 예를 들어 조사 대상 기업 중 C사는 여성들이 입사 당시 가졌던 승진 목표를 “임원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34%였으며 “현재 성취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승진 목표도 임원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도 36%로 증가한 유일한 회사였다.

당시 조사를 진행했던 박현정 현 서울시향 대표는 “해당 기업인 C사는 직원들 사이에 남녀 평가가 공정하다는 신뢰가 있었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도 내가 일한 만큼 평가받는다는 믿음이 강했다”며 “결국 회사의 비전에 따라 여성의 성취욕구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여직원들이 게으르고 성취동기가 낮다고 느껴지는 회사라면 여직원들을 탓하기 전에 여직원들에게 혹시 비전을 못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여자니까… 여자라서…

남성 직장인들이 가진 편견 중에는 실적이 뛰어난 여성에 대해 ‘얼굴이 예뻐서’ ‘상사가 좋아하니까’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모 대기업 마케팅팀은 최근 천신만고 끝에 상사로부터 프로젝트 진행을 허락받았다. 상사를 결정적으로 설득한 데에는 B 대리(30·여)의 역할이 컸다. 팀원들은 B의 공을 칭찬하면서도 “예쁘고 애교도 많아서 상사가 넘어갔다. 여자라 부럽다”고 뒷말을 했다. B 대리는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일을 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단지 여자라서 쉽게 일이 풀렸다고 보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고 말했다.

공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C(37·여)는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아 직장생활을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C는 “일을 꼼꼼하게 챙기다 보면 ‘여자라서 소심하다’는 말을 듣고,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결정을 조금 늦추면 ‘여자라서 추진력이 모자란다’는 말을 듣는다. 좀 터프하게 굴면 ‘여자가 왜 저래?’ 한다”며 “남자들은 남자 후배를 챙긴다고 ‘남자만 챙긴다’는 말을 듣지 않지만 여자 상사가 여자 후배를 챙기면 ‘여자만 챙긴다’는 말을 꼭 듣는다”고 했다.

취재팀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기업 여성 임원 E에게 ‘임원이 된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1비결은 ‘끊임없는 뒷담화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체형이) 마르면 말랐다고 욕을 먹고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욕을 먹는다. 목소리가 크면 억세다고 욕을 먹고 작으면 ‘저래 갖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욕을 먹는다. 여자가 소수인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

‘뒷담화’에 대한 남녀간 인식차도 크다. 여성리더십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이 더 뒷담화를 많이 한다’는 문항에 남자들은 38.8%만 “예”라 답한 반면 여성들은 75.1%나 “예”라고 답했다. 직급별 차이도 두드러졌다. 여자 차장 부장은 89.7%가, 여성 부서장은 90.8%가 “예”라고 답해 직급이 높은 여성들일수록 남자들의 뒷담화를 견뎌야 한다는 E의 말을 뒷받침했다. 또 ‘남자들 입이 (여자보다) 더 무겁다’는 문항에는 남성들의 37.7%가 “예”라고 한 반면 여성들은 불과 7%만 “예”라고 했다. 직급별로는 ‘남자들 입이 더 무겁다’는 문항에 “예”라고 답한 여자 차장 부장은 2.9%, 여자 부서장은 한 명도 없었다(0%). 보통 여자들이 입이 가볍고 뒷담화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성들은 직위가 높아질수록 “남자들이 더 말이 많고 입도 무겁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직장 내 성별 간 인식차는 사소한 데서도 드러난다.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여자들은 누군가 해야 할 궂은일을 하려 하지 않는 공주병이 있다’는 문항에 대해 남성들은 54%가 동의했지만 여자는 20%만이 동의했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돈을 쓰지 않는다’는 문항에 남성들은 44%가 동의했지만 여성들은 12%만이 동의했다. 또 ‘동료로 행동하기보다 여자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에는 남자의 36%가 ‘예’라고 답한 반면 여자들은 14%만이 인정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들이 보호와 평등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문항에 남성은 68%, 여성은 52%가 동의했는데 이는 성별 관리자급에서 격차가 더 커졌다. 남자 차장 부장의 경우 75%가, 남자 부서장의 72%가 “예”라고 한 반면 여성 차장 부장은 27%만 동의했다. 그러나 여성 임원의 경우 무려 72%가 동의해 남성 수치에 육박했다. 여성들도 조직에서 관리자급으로 승진할수록 여자의 관점이 아닌 조직의 관점에서 구성원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직장인들의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남자들도 인정했다. 남성 응답자의 54.7%가 ‘여성들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는 항목에 “예”라고 답했으며 61.7%가 ‘여자들이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일한다’는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

이진구·구가인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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