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세환]‘6·25 영웅’ 백선엽 장군이 민족반역자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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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영웅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아니다! 영웅은 영웅을 그리워하는 시대정신에 의해 태어난다. 영웅은 털끝만큼의 흠도 없는 사람인가? 아니다! 영웅은 많은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흠을 덮을 만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전쟁 영웅을 갖고 있고, 그들을 존경한다. 후손들이 존경하는 전쟁 영웅이 있어야만 제2, 제3의 전쟁 영웅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맥아더 장군,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다. 영국에는 처칠, 몽고메리 장군이 있고, 독일에는 로멜 장군이 있다.

그렇다면 60여 년 전 500만 동족의 사상자를 낸 6·25전쟁을 치른 우리는 6·25의 영웅을 갖고 있는가. 이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부분 백선엽 장군을 지목한다.

1946년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하여 사단장, 군단장, 육군참모총장으로서 6·25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지휘했던 장군, 사단장 시절에는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군의 재건과 숙군을 동시에 이루어낸 주역, 그리고 지금은 9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향해 “6·25를 잊고 있으면 제2의 6·25를 맞는다”고 사자후를 토하는 장군.

백 장군의 전투지휘 백미는 다부동 전투다. 최후의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집단으로 퇴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백 장군은 권총을 쏘며 선두로 달려 나가 소리쳤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 결국 백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운명을 지켜냈다.

백 장군은 우리보다 오히려 미군들에게 더욱 존경받는 전쟁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취임식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으로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되었다. 미군 장성 진급자의 모임인 캡스톤그룹이 한국에 오면 백 장군을 만나는 것이 필수 코스다. 주한미군 장성 모두가 참가하는 6·25 전적지 견학에는 반드시 백 장군을 초대한다.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다. 백 장군의 6·25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9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모 의원이 백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비하했다. 일제강점기를 모르고 6·25전쟁을 모르는 젊은이의 발언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다.

백 장군이 태어난 1920년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채 10, 20대를 보낸 청년에게 일본은 자기 나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의해 교육받고 일본의 체제에서 근무한 것을 탓한다면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 백 장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일제강점기 행적에 흠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백 장군은 26세의 나이에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6·25전쟁을 치렀고, 전후에는 군 재건의 산파역을 담당했다. 미군과의 동맹과 원만한 연합작전을 이끌어내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큰 공적을 세운 일등공신이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이 이 시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떤 예우를 받았을까? 분명 성인 대우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웅은 영웅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어떻게 영웅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 존경할 만한 영웅이 없는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영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백선엽#민족반역자#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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