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배우 다니엘 헤니“할리우드 엄청 살벌하지만 자신감 하나로 미드 주역 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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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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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초단위로 짜인 바쁜 일정 때문에 눈이 조금 충혈돼 있었지만 매너 좋기로 소문난 다니엘 헤니는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으나 어떤 질문에는 유창한 한국어로 답하기도 했다. 이종승 기자
귀국 후 초단위로 짜인 바쁜 일정 때문에 눈이 조금 충혈돼 있었지만 매너 좋기로 소문난 다니엘 헤니는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으나 어떤 질문에는 유창한 한국어로 답하기도 했다. 이종승 기자
10㎡(약 3평) 남짓한 작은 방을 가득 메운 15명의 제작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 3대. 짧은 인사를 마칠 겨를도 없이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 달라”는 주문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외모가 반반 섞인 배우에게 쏠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30개의 눈동자….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첫 오디션을 보던 일을 다니엘 헤니(30)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오디션 한 번 보지 않고 자리 잡은 한국에서와 달리 할리우드에서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는 것이다.

헤니는 국내에서 CF 모델로 활동하다 2005년 데뷔작인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순식간에 스타 배우가 됐다. KBS2 드라마 ‘봄의 왈츠’(2006년)에 이어 영화 ‘미스터 로빈 꼬시기’(2006년) ‘마이 파더’(2007년)를 통해 주연급 배우로 컸고,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년)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할리우드 입성에도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헤니의 사소한 일상까지 뉴스가 되지만 할리우드 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말을 아끼며 할리우드 작품에만 전념해온 그는 CF 촬영과 차기 작품을 위한 회의 참석차 17일 입국했다. 그리고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동아일보와 2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갖고 할리우드에서 동양계 배우로 활동하며 느꼈던 애환과 성취감을 ‘등장인물’들의 성대모사까지 곁들여 가며 생생하게 들려줬다.

○ 무섭고 상처받았던 할리우드 오디션

그가 느낀 할리우드의 첫인상은 “녹록지 않은 오디션으로 도전자들을 맞는다”는 것이었다. “적게는 3페이지에서 많게는 11페이지나 되는 대본을 하룻밤 새 외워 오디션을 봐야 했어요. 작품을 엄선해 일주일에 5, 6개의 오디션만 치르고 나도 진이 다 빠졌죠.”

그는 할리우드식 오디션을 묘사하며 다양한 형용사를 늘어놓았다. ‘무섭고(frightening), 어색하고(unnatural), 상처받기 쉽고(vulnerable), 초라하게(humble)’하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무사히 오디션을 치르고도 또 다른 수많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늘 ‘올(all·출연 결정)’이거나 ‘너싱(nothing·탈락)’이기에 마음을 비우는 내공이 필요했다.

“잘 풀리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도전으로 옮겨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 스스로도 이런 경험을 통해 배우로서 더 크게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를 할리우드로 이끌어준 작품은 영화 ‘마이 파더’다. 이 영화에서 헤니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 미군에 지원하는 입양아로 열연했다. 그리고 이 영화로 2007년 청룡영화제, 대한민국영화대상과 2008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의 개빈 후드 감독은 ‘마이 파더’의 헤니를 눈여겨보고 오디션 없이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이후 헤니는 그 무섭고 상처 준다는 할리우드 오디션을 통과해 미국 CBS의 TV 드라마 ‘스리 리버스(Three Rivers)’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백인 배우들과 경쟁해 백인을 위한 메이저 배역을 따낸 것이다.
“美감독-작가,동양인 잘 몰라
백인역으로 정해진 자리라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걸 보여야”

○ 백인 배우들과 경쟁해 따낸 백인 배역

“제가 맡은 외과 레지던트의 극 중 이름이 원래 ‘데이비드 리오니’였어요. 그걸 제가 맡게 되면서 성이 ‘리’로 바뀌었죠. 저는 데이비드가 로맨틱 가이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맘에 들었어요. 지금까지 미국에서 동양 남자의 로맨스를 제대로 그린 드라마가 없었거든요. 동양 남성이 백인 여성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그리면서 할리우드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이 드라마 덕에 그는 지난해 가을 미국 잡지 ‘라이프&스타일’이 선정한 미국 남성 배우 ‘핫 가이(Hot Guy)’ 2위로 꼽히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편성된 드라마 주인공 가운데 가장 섹시한 배우를 선정하는 차트였다.

인터뷰에 동석한 소속사의 마리아 정 대표는 “연출진이 헤니를 기용하려고 그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줬다는 점도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TV 시리즈에 출연할 때 보통 7년을 계약 기간으로 하는 게 할리우드식 관행인데 헤니는 이를 깨고 본인의 요구대로 3년간 계약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즌 1의 촬영을 마친 이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이미 제작된 13개 에피소드 가운데 8편만 나가고 방영이 중단됐다.

“대진 운이 좋지 않았어요. 팬 층이 두꺼운 ABC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과 폭스 애니메이션 ‘패밀리 가이’와 경쟁했고, 2009 북미프로미식축구 정규리그 경기가 NBC에서 방영됐죠. 나중에는 프로풋볼 경기 직후 시간대에 방영됐는데 경기가 너무 늦게 끝나는 날엔 드라마가 밤 11시 이후에 시작될 때도 많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진지한 얘기 도중 그는 갑자기 한국계인 어머니 목소리를 흉내 냈다. 드라마가 늦게 방영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로부터 이런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는 것이다. “얘야, 방송사에 전화해 제 시간에 좀 방영하라고 해라.”

○ 한국배우 美 진출의 걸림돌은 영어가 아니라…

그의 국적은 미국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스스로를 ‘한국 배우’라고 소개한다고 했다. 또 비, 이병헌, 김윤진에 이어 더 많은 동료 한국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 진출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겠죠. 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로 어필하면 영어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발탁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국 배우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톱 배우들은 자존심을 다쳐가면서 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는데 할리우드 진출을 원한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또 동양계 배우들의 할리우드 입성이 어려운 이유는 ‘차별’이 아닌 할리우드 제작팀의 ‘무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LA)에서 활동하는 감독과 작가 중 상당수가 백인입니다. 주로 중산층 백인 커뮤니티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이죠. 동양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백인 역할밖에 구상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양계 배우도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들이 몸으로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죠.”

한국과 미국에서 연예 생활을 병행하고 싶다는 그는 최근 LA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골든레트리버종의 애견 ‘망고’도 서울에서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망고 얘기가 나오자 그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망고가 한국서만 오래 살아 영어를 못해 걱정”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 ‘김치찌개’ 발음하면 입에 침이 고여

그가 할리우드 활동에 전념하는 동안에도 한국에선 그의 존재감이 여전했다. 화장품과 아파트 광고에서 그는 변함없는 친절한 미소로 대중과 만났고,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탤런트 이다해는 “헤니가 내 이상형”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얼마 전 포털 사이트 ‘네이트’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란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떨어져 있는 동안 한국 가요와 TV 드라마, 한국 음식으로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모던 록밴드 ‘넬’의 음악은 항상 즐겨 들어요. 위성 TV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도 봤어요. 미국에서 함께 사는 백인 친구가 유튜브로 ‘티아라’의 ‘보핍보핍’ 뮤직비디오를 보더니 귀엽다고 열광하는 통에 아이돌 최신 음악도 섭렵하게 됐지요.”

해외 활동을 하며 한국이 가장 절실히 그리울 때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때다. ‘김치찌개’ 네 음절을 발음하는 동안에도 침이 고인다는 그는 “외국에선 본토에서만큼 잘 만드는 식당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LA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적으니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 오면 오히려 더 안심이 되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 참. 극성 소녀 팬들의 환호도 그리웠어요.”

그는 조만간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차기 작품과 관련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동영상=헐리웃 스타, 다니엘 헤니 전격인터뷰

■ 광고계, 헤니에 잇단 러브콜
도회적 이미지에 안티 적어


인기 배우 다니엘 헤니에게는 국내 광고계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비오템’은 6년째 다니엘 헤니를 남성 라인 ‘비오템 옴므’의 한국 시장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사진). 그동안 여성 라인의 모델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최연아 비오템 이사는 “헤니는 부드러운 성격에 외모에도 관심이 많은 메트로섹슈얼 이미지와 잘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이사는 또 “광고 촬영 현장에서 헤니가 보여준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에 반해 팀원 전체가 그의 팬이 됐다”고 전했다. 스크린 안팎에서 그가 보여주는 훈훈한 인간미가 광고주와 오랜 인연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올 2월 패밀리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광고 촬영을 위해 헤니와 호주를 다녀온 광고대행사 맥켄에릭슨의 손정현 이사도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 일일이 스태프의 구명조끼를 점검해 입혀주고 밸런타인데이라고 초콜릿 선물까지 하더라”고 전했다.

‘매너남’ 헤니는 20일 저녁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가 “기사 마감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타이핑이라도 대신 해주고 싶다”며 걱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스크린 밖의 이런 소탈한 모습이 널리 알려진 덕분인지 ‘안티팬’이 거의 없다는 점도 모델로서 장점으로 꼽힌다.

제일기획 김홍탁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이에 더해 “한국인 혼혈이라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국인이라는 점이 신비감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과거 행적이 낱낱이 공개되는 ‘토종’ 연예인들과 달리 외국인들의 데뷔 전후 사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헤니는 최근 2년간 할리우드 활동에 집중해 국내에서는 공백기가 길었는데도 ‘두산건설’ 등 4개 국내 브랜드의 모델을 맡고 있다. 오리콤 남지연 국장은 “언어 등 외국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국 내 작품 활동이 제한적으로 느껴질 무렵 할리우드로 진출해 영역을 넓힌 게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LG전자 싸이언은 지난해 5월 ‘아레나폰’을 출시하면서 3년 만에 그를 모델로 다시 기용했다. 이 회사 신현준 팀장은 “글로벌을 콘셉트로 잡은 제품의 특성과 그의 할리우드 활동이 이미지상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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