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화적 소양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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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남녀의 사랑과 형제간 우애, 친구사이 우정 같은 것들이다. 사랑과 우애 우정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문화적 소양’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촛불을 켠 우아한 만찬을 기대하는 아내와 삼겹살 구이에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 하는 남편의 ‘문화적 차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학식과 지위가 높은 인사라도 문화적 소양이 형편없는 경우가 있고, 대학을 나오지 못한 근로자지만 해박한 문화적 식견을 갖고 있는 ‘강호의 고수’도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문화적 소양에 대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의 분석이 재미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가수로 부시는 재즈와 비틀스를 들었으나 구체적 곡명과 멤버의 이름은 대지 못했고, 케리는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 스톤스 등을 대며 음악 전반에 관한 지식을 과시했다. 부시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데 반해 케리는 ‘디어 헌터’ ‘브레이브 하트’ ‘맨 인 블랙’ 등을 열거했다.

▷좋아하는 문학작품으로 부시는 로버트 파커의 탐정소설을 언급했으나 케리는 존 키츠, 윌리엄 예이츠, T S 엘리엇 같은 시인을 열거했다. 부시가 심장을 뛰게 했던 여배우로 청순파인 ‘닥터 지바고’의 줄리 크리스티를 든 데 반해 케리는 ‘젊은이의 양지’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메릴린 먼로 같은 육체파를 든 것이 재미있다. 압권은 부시가 가장 좋아하는 문화적 경험으로 ‘야구’를 든 점이다. 부시가 솔직담백하게 문화적 소양 부족을 시인한 데 반해, 케리는 표를 의식한 정치적 답변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 역대 대통령의 문화적 소양은 어떤가. 전반적으로 보편적인 한국 정치인의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그보다 못하다고 본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비로소 오페라에 와 본 이들이 대다수고, 정치적 활용을 위해 예술인들과 교유하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작가와 문학작품을 줄줄이 꿰고, 일필휘지로 자신의 심경을 담아 내며, 주말이면 경호원 한두 명만 대동하고 영화관이나 미술관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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