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풍문 속에 묻힌 솔제니친

  • 입력 2008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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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박경리 홍성원 이청준, 세 분의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작품 세계의 규모나 특성은 다를망정 세 분은 전업 작가로 문학에 정진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많은 애독자의 사랑을 받아 ‘국민작가’란 호칭이 어울리는 박경리,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된 홍성원, 문학 지망자 사이에서 숭상과 추종의 모형이 되어준 이청준.

세 분이 거의 동시에 세상을 뜬 것은 우리 문학의 커다란 상실이다. 광복 이전에 타계한 대부분의 문인에 비해 장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격하게 늘어난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때 이른 작고여서 허전함이 크다. 고인들에게 보내준 애정과 추모의 사회적 예우가 그나마 허전함을 달래주었다.

이달 초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세상을 떴다. 작가적 위상에 비해 국내에서의 반응은 냉담하거나 소소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시점이어서 관심 밖으로 내몰린 탓도 있을 것이다. 필자 자신도 이 글을 쓰면서 어제 시종 눈을 뗄 수 없었던 올림픽 경기 중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태권도의 금메달, 아슬아슬한 널뛰기 접전 끝에 유종의 미를 거둔 핸드볼 ‘우생순’ 선수들의 선전, 선수도 감독도 국민도 믿기지 않는다고 할 정도의 감동적 개가를 올린 야구 경기의 여러 장면이 눈에 어른거려 정신 집중이 잘 안되는 형편이다. 평소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데도 그렇다.

‘한시적 문학’은 편견과 오해

솔제니친의 죽음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그의 책이 많이 읽히지 않은 점과 관련될 것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제외하고는 별로 읽혀진 바 없다. ‘암병동’ ‘수용소 열도’도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이어서 사실 그는 한국에서는 풍문 속의 작가였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도 별로 안 읽히는 독서풍토에서 강제수용소 얘기를 찾아 읽을 독자는 희귀할 것이다. 영화화된 작품의 국내 상영이 없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소련의 반체제 저항 작가라는 판에 박힌 규정도 그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켰다. ‘권력의 악용에 대한 사건들을 명확하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란 흐루쇼프의 공산당대회 연설과 함께 알려진 풍문의 작가가 본의 아니게 떠안은 불이익이다.

스탈린 시대라는 특정 역사적 시기에 대한 준엄한 고발이라는 투로 수용되면서 한시적 문학이란 인상을 풍기게 됐다. 자본주의의 그늘에 대해선 눈에 불을 켜고 덤비지만 반대쪽의 어둠에 대해선 입 봉하고 참선하는 우리 쪽 이중 잣대 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서방세계의 부패와 물질지상주의를 비판한 그를 위해서 애석한 일이다.

솔제니친은 인류의 교사이자 정신적 지도자라는 그릇 큰 작가의 계보에서 아마 마지막 선량이 될지 모른다. 근대문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치열한 모색을 통해서 성숙해왔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세속화’ 과정에서 시인 작가들은 그때껏 성직자가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아 정신적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 그러한 작가의 계보는 끊어져 가고 있다. 있다 하더라도 영 독자를 얻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다.

글로벌 시대의 귀염둥이는 36개 언어로 번역됐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들의 문학적 상업적 재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팝음악의 문학적 등가물 생산자이고 소비자 우위 시대의 시간소비용 소일거리 제공자일 뿐이다. 언어예술가도 아니고 정신적 지도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을 비웃는 문화 포퓰리즘의 대표자일 뿐이다.

인류의 교사-정신적 지도자

솔제니친의 죽음은 우리에게 문학의 선택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스포츠는 생존경쟁의 놀이 형태이다. 스포츠는 동시에 뛰어남의 축제임을 올림픽 경기를 통해서 우리는 실감했다. 뛰어나지 못한 것은 우리를 감동시키지도 고양시키지도 못한다. 스포츠에서는 자유자재한 신체 구사 능력과 정신적 자기 제어능력이 뛰어남의 근간이다. 그러면 문학과 예술에서 뛰어남이란 무엇일까? 스포츠에서 뛰어남에 열광하는 우리는 문학에서도 뛰어남에 열광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뛰어남을 숭상하며 감동받고 고양돼야 마땅하지 않은가?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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