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이웅평씨 미그기 타고 귀순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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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58분경 서울 수도권 일원에 갑자기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5분간 계속된 사이렌에 시내 도로를 운행하던 운전자들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고 신문사에는 무슨 일이냐는 전화가 빗발쳤다.(1983년 2월 25일자 동아일보 1면)

이날의 소동은 북한 공군의 이웅평(李雄平·2002년 5월 작고) 상위(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한국군과 미국군은 팀스피릿 훈련 중이었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준(準)전시를 선포해 놓았다. 바로 그날 평남 개천 비행장에서 이 대위가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 왔다.

한국 공군의 F-5 전투기들이 이 대위의 미그기를 발견하고 요격(邀擊)에 나섰다.

미그기는 귀순하겠다는 뜻으로 날개를 흔들었고 F-5기는 미그기를 유도해 수원비행장에 착륙시켰다.

그해 5월 5일엔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이 벌어졌고 8월 7일에는 중국군 쑨톈친(孫天勤) 비행원이 미그-21기를 몰고 서해안으로 남하해 망명을 요청했다. 유난히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외쳐대는 공습 사이렌이 많은 해였다.

야구 중계 도중 관중이 혼비백산해 대피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고 동네 슈퍼마켓에는 라면 양초 우유 밀가루를 사재기하려는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라면 사재기 현상은 1991년 걸프전, 1994년 북핵 위기 때도 일어났으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서해교전, 2003년 이라크전 때는 거의 사라졌다.

이 대위는 바닷물을 통해 흘러온 ‘라면 봉지’를 보고 남한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남한 당국의 어떠한 선전물이나 대북 방송보다 계란과 파를 넣은 먹음직한 라면 사진이 더 강렬한 인상을 준 듯하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라면 맛을 보면 대량 탈북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남북 간의 긴장과 화해의 역사에서 심심찮게 등장해 온 라면은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임에 틀림없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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