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는 찻집-성평등 인형극단으로 예술문화 공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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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농촌지역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창단한 ‘송정리 성평등 인형극단’.
농촌지역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창단한 ‘송정리 성평등 인형극단’.
충남 부여군 남쪽인 양화면 송정마을은 일흔을 넘긴 노인들만 산다. 60세가 넘어서야 청년회장을 할 수 있는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2015년부터 부여군이 창조마을 사업의 하나로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 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군의 위탁을 받은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은 그해부터 이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그램책을 읽기 시작했다. 논밭 농사에만 익숙한 손에 그림책은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족, 농사, 나무, 도깨비 등 익숙한 주제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16년 7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경로회관에 모여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그림책 읽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그림 그리기는 또 다른 낯선 작업이었다. 그래서 수업을 몰래 빠지고 논밭 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작물과 농촌풍경을 그려가면서 그림 그리기에 조금씩 친숙해졌다.

이렇게 그린 그림 하나하나가 모여 23권의 그림책이 완성됐다. 이제 그림책을 완성해 놓고 서로 품평을 하는 성숙함을 갖게 됐다. 그림책은 각자의 세상을 담고 있다. 전열귀 할머니의 그림책은 극진한 자식 사랑을 담고 있다. 박남순 할아버지의 ‘호두나무와 청설모 그리고 나’는 청설모와 실랑이를 하며 호두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애환이 잘 녹아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이 농부 화가들의 ‘내 인생의 그림책’ 전시회가 열렸다.

드디어 지난해 8월에는 처음 목표로 했던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이 들어섰다. 면적 152m², 지상 2층 건물에 전시 공간, 그림책 열람 공간, 그림책 다락방 등을 갖췄다. 찻집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그림책과 그림이 전시돼 있다. 판매되는 차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꽃과 작물로 만든 자연차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을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할머니 도시락’과 마을 지도가 그려진 돗자리, 윷놀이 세트 등이 담긴 차 바구니를 빌려준다.

부여군은 그림책 만들기와 찻집 조성으로 자신감이 커진 송정마을을 여성친화도시 사업 대상지로 정했다. 농촌지역의 양성평등 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이 마을에 4월 ‘송정리 성평등 인형극단’을 창단했다. 인형극단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맑은샘 인형극단의 지도를 받아 10월 말까지 24회에 걸친 연습을 거쳐 4일 초연에 성공했다. 극단 단원인 이 마을 70대 어르신 15명이 인형과 무대 제작뿐 아니라 대본작성, 녹음까지 직접 참여했다. 송정마을은 청룡그림책정거장, 오백 살 된 도토리나무, 차밭과 원두막 등 ‘송정마을 8경’을 운영하면서 최근 주말 관광객이 많게는 1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인형극은 말로 하는 강연보다 훨씬 효과가 크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양성평등 의식의 저변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송정마을을 통해 농촌이 높은 예술문화를 향유하고 이를 도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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