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한기재]태평양 너머 美 아이오와에 박힌 중국의 화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선전물. 2012년에 도입된 것으로 ‘국가 부강’이 그 첫 번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부강을 경계하며 미중 무역전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칭다오=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선전물. 2012년에 도입된 것으로 ‘국가 부강’이 그 첫 번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부강을 경계하며 미중 무역전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칭다오=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한기재 국제부 기자
한기재 국제부 기자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7일 오후(한국 시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만두집에서 같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중국 기자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가 보여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 상단엔 CNN 속보 배너가 하나 떠 있었다. 미국 민주당의 하원 과반 탈환이 확정적이란 소식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름의 해답을 찾느라 몇 분간 수저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한중일협력사무국(TCS)과 중국 관영 런민(人民)일보 자매지 환추(環球)시보가 공동 주최하는 ‘한중일 기자 합동취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기자는 중국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접했다. 식사 자리에 동석한 중국 기자뿐만 아니라 기자가 만난 중국인들이 중간선거 결과에 보인 관심의 정도는 상당했다. 선거 결과가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인식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중간선거 국면에서 수동적인 외부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올 7월 백악관이 중국산 수입품 340억 달러(약 38조 원)어치에 관세를 매기며 미중 무역전쟁의 서막을 열자 중국은 콩과 쇠고기 등 미국 농산품을 조준해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여당 공화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농촌을 때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선거 패배를 유도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반격으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상당 부분 적중했다. 지난해 9월 월간 약 250만 t에 이르던 미국의 대(對)중국 콩 수출은 올해 같은 달 약 7만 t으로 급락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콩을 많이 생산하는 아이오와주는 이번 선거에서 ‘빨간색(공화당 상징색) 옷’을 벗어던졌다. 이 주에 있는 총 4개의 연방하원 지역구 중 3개를 차지하고 있던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두 곳을 민주당에 빼앗겼다. 지난 대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지역들이다.

공화당은 유일하게 승리한 제4선거구에서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불과 2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27%포인트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전 국무장관)를 누른 곳에서 공화당 현역이 3%포인트라는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 후보를 이긴 것이다.

공화당의 아이오와 고전(苦戰)이 오로지 무역전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밥줄’이 걸려 있는 문제가 표심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에런 리먼 아이오와 농가협회 회장은 9일 워싱턴포스트(WP)에 “공화당 후보들도 트럼프 정책을 비판했지만 수위를 조절해야 했고 결국 그 여파가 선거 결과에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내 콩 생산 3위인 미네소타주에서도 농가가 집중돼 있는 제2지역구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 화살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 진군(進軍)을 멈출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열변을 토하던 테이블 맞은편 중국 기자의 결론은 “누가 이기든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굴기하고 미국은 초강국의 지위를 지키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상 두 나라가 맞붙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중국은 장기전 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추진’은 중국이 생각하는 여러 대응 시나리오 중 하나다. 한국과 일본도 무역전쟁 여파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참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3국이 뭉쳐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해 중국 내 유력 매체들이 무역전쟁과 관련된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얘기도 현지에서 들었다.

기자가 이번에 방문한 베이징과 칭다오(靑島) 도처에서 볼 수 있었던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란 제목의 선홍색 중국 공산당 선전 간판에서는 ‘국가 부강(富强)’이 그 첫 번째다. 중국은 대륙 곳곳에 걸린 ‘부강’이란 희망적인 단어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이를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피는 끓고 있을 것이다. 중간선거라는 전쟁을 치른 뒤 트럼프 대통령의 갑옷 이곳저곳엔 태평양 너머 중국에서 날아온 화살도 박혀 있다. 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 응전(應戰)할까. 미중 양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칭다오에서
 
한기재 국제부 기자 record@donga.com
#미국 중간선거#미중 무역전쟁#보복관세#아이오와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