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정훈]미끼를 문 트럼프의 본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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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아야 얻어낼 게 많아
‘대화’라 쓰고 ‘압박’으로 읽어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의 DNA는 독특하다. 칠십 평생 여성, 돈, 권력을 모두 누린 드문 사람이다. 이제 미국 대통령까지 돼 멋대로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남다른 DNA의 핵심은 ‘원하는 걸 얻어내는 천재적 면모’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북한 김정은이 무릎 꿇는 걸 원한다. 말로 안 되면 힘으로 한다는 생각이다.

트럼프가 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전달한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덥석 문 걸 두고 워싱턴이 시끄럽다. “트럼프가 45분 만에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했던 뉴욕타임스는 이제 “경솔한 판단”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잘못 계획된 회담이 미뤄지길 우리 모두 기도하자”는 제목의 칼럼까지 실었다. 과거 정부에서 북한과 협상했던 국무부 출신 인사들도 “김정은의 진심에 비핵화는 없다”고 아우성이다. 비관론 일색이다. “27년간 북한에 속아왔다”며 북한을 가장 불신했던 트럼프가 미끼를 문 본심은 뭘까.

최근 만난 백악관의 한 국장급 인사는 “지금부터는 트럼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말은 전임자와 차별화하려는 국내 정치용이고, 행동은 김정은을 옭아매려는 대북용”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트럼프는 “위대한 타결을 볼 것”이라고 어린애처럼 들떠 말했지만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부터 바꾸는 승부수를 던졌다. 국무장관에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매일 아침 트럼프의 귀에 “김정은 정권 교체가 해답”이라고 주문을 걸던 사람이다. 22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존 볼턴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대북 선제공격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초강경파다. 김정은이 “비핵화 그까이꺼 대충…” 이랬다간 국물도 없게 생겼다.

미 행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핵화 검증 조치부터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2005년 9·19 비핵화 합의가 사찰 거부로 깨졌다는 점을 파고들 거란 설명이다. “수용하면 비핵화 의지를 인정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거부하면 협상을 깰 명분을 쥔다”는 논리다. 그 요구는 김정은과 먼저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통할 가능성이 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트럼프식 접근법이다.

비핵화 검증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트럼프가 북한이 던진 미끼를 문 본심은 뭘까. 트럼프는 북핵을 해결한 위대한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 그건 재선(再選)으로 가는 열쇠다. 서로 ‘간 보는’ 몇 차례의 고위급회담을 거치면 북한은 시간을 벌게 된다. 대화 국면이 길어지면 제재에 구멍이 뚫릴 위험도 커진다. 트럼프에게 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과, 존재감을 키우려는 러시아가 대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제재를 느슨하게 해줄 수도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도 시간에 쫓기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김정은의 약속을 믿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린다. 순진한 질문이다. 트럼프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협상 상대는 더 안 믿는다. 못 미더운 게 아니라 믿지 않아야 얻어낼 게 많기 때문이다. 상대의 약속을 약점 삼아 더 큰 목표를 이루는 게 트럼프식 협상법이다. ‘코피작전은 없다’는 관리들의 답변은 어떤가. 트럼프는 ‘평화적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대화’라고 쓰고 ‘압박’으로 읽는다. 미끼를 타고가 낚시꾼(북한)을 잡겠다는 트럼프의 본심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중재도 성공한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도널드 트럼프#북미 정상회담#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북한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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