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정치인 ‘연예인 놀이’ 재미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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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최근 리모컨을 돌리다 이재명 성남시장 부부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시장은 요리를 하거나 여름 휴가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부인과 티격태격하며 부부간의 동상이몽을 보여주었다. 선출직도 공무원인데 공무원이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성남 부시장이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한다고 하면 시장은 “미쳤냐”고 할 것이다. 부시장은 직업 공무원이니까 안 되고 선출직인 시장은 가능하다면 이중 잣대다. 이 시장은 대선 후보를 지낸 정치인이기 이전에 100만 시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성남 시민인 필자는 시장의 본분을 망각한 어이없는 행태에 대한 시청자의 환호와 시민의 무관심도 못마땅하다. 우리가 어쩌다 시장의 사생활을 훔쳐보며 즐거워하는 관음증 국가가 되어버렸나.


예능 고정 출연 이재명 시장

현직 시장의 예능 고정 출연은 법률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시장은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직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선거 기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년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TV에 이렇게 많이 노출되는 게 공정한가. 출연료를 받고 출연한다면 금액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이 시장은 촬영이 퇴근 후나 휴일에 집 안에서 이뤄지고 이건 시정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렇듯 시장에게도 근무 시간은 따로 없다. 촬영에 신경 쓰는 만큼 시정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방송 출연에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며 하다못해 메이크업이라도 받아야 한다. 이런 일에 시청 직원을 동원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건가.

TV에 비치는 이 시장 부부의 생활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많은 이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이 재미있다며 공감을 표하고 있지만 카메라를 의식하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더욱이 그는 권력욕에 불타는 정치인이다.

방송사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게 PD의 운명이니까. 정치 지망생이 예능에 출연하거나 현직이라도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은 괜찮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과거에 ‘어프렌티스’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정치 입문의 계기를 마련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무릎팍도사’ 출연으로 떴다. 그러나 게스트 출연과 고정 출연은 다르다. 이런 게 용인된다면 지자체장들이 일은 팽개치고 예능에 나가 얼굴을 알리는 데만 신경 쓰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시장의 출연 이후 지자체장들 사이에서 방송 출연 기회를 만들라고 부하 직원을 닦달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까지 출연시킨 기동민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서 정치인 팔자가 연예인 팔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연예인은 외모나 재능을 통해 인기를 얻지만 정치인은 논리와 정책으로 지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정치인의 가족까지 예능 프로에 등장하는 게 한 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과 20대 아들이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하는 데 대해 많은 청년들이 “연예인도 모자라 이제는 정치인 2세도 아버지 덕에 TV에 데뷔하느냐”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기 의원의 행동은 다음 선거에서 심판될 것이다.

정치판이 코미디 같으니 정치가 예능화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정치인이 연예인 놀음에 빠지는 것은 정말 못 봐주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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