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규 “13년전 출소… 이젠 다른 출소자 도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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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수감’ 절망 이겨낸 황병규씨, 교도소 나온후 도움받고 새 인생 “도색업체 차려 취업 돕고 싶어”

2004년 겨울, 교도소 철문을 나섰다. 주머니에는 교도소에서 번 35만 원이 있었다. 가진 돈의 전부였다. 폭력조직에 몸담았다가 상해치사죄로 복역한 5년의 시간이 야속할 뿐이었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3년 전 출소 당시 황병규 씨(58·사진)의 심경이다. 그는 16세 때 친구를 때려 처음 소년원에 갔다. 이후 소년원과 교도소를 10회나 들락거렸다. 수감생활은 도합 17년이었다.

24일 강원 홍천군의 한 공사현장에서 황 씨를 만났다. 그는 요양원 건물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모자와 작업복 여기저기에 흰색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걷어 올렸던 긴소매 셔츠를 내렸다. “온몸이 문신이라서….”

13년 전 출소 후 삶의 의욕을 찾지 못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출소자의 자립을 돕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강원지부 소속 김영태 씨(60). 두 사람은 황 씨가 처음 소년원에서 나왔을 때 형 동생의 인연을 맺었다. 황 씨가 교도소를 들락거릴 때마다 안타까워하던 김 씨는 이날 그에게 소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네가 무너지면 아이들도 무너진다.”

김 씨는 황 씨의 초등학생 아들이 갖고 싶어 하던 컴퓨터까지 대신 사줬다. 주먹 쓰는 것밖에 모르던 황 씨는 그제서야 가족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황 씨는 이제 공단에서 ‘대부’로 불린다. 수시로 공단을 찾으며 김 씨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출소자를 돕고 있다. 그는 자신이 김 씨로부터 느꼈던 고마움을 다른 출소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황 씨가 출소자를 위해 건넨 돈은 약 1000만 원. 명절마다 보낸 사과와 배는 수백 상자에 달한다.

물론 출소 후 13년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꽃처럼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다”며 시작한 꽃가게는 6년 만에 문을 닫았고 칼국수 장사도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골재회사에 취직도 했지만 회사가 부도났다.

하지만 황 씨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하루 13만 원의 일당을 벌지만 부족함은 없다고 말했다. 2006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번듯한 집도 한 채 지었다. 황 씨는 “제 손이 이래봬도 엄청 야무져요. 꽃꽂이도, 밀가루 반죽도 다 이 손으로 했거든요”라며 굳은살이 박이고 손톱마저 깨진 투박한 손을 보여줬다. 그는 도색업체 사장이 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업체를 키워 출소자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황 씨는 출소자를 만날 때마다 음료수 한 병을 쥐여주며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를 늘 빼놓지 않는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황병규#출소자의 자립#김영태#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강원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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