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독서부대 10만 양병… 나라가 바뀝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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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독서문화진흥회 김을호 회장

‘책 읽는 우수가족 10만 세대 선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김을호 회장. 그는 “독서에도 열정과 끈기, 목표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책 읽는 우수가족 10만 세대 선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김을호 회장. 그는 “독서에도 열정과 끈기, 목표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만 명이 매월 같은 날 책 한 권을 정해 일제히 구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서점에서 산다면. 요즘 월간 3000권에서 4000권 팔리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다고 하니 출판사나 저자, 동네 서점 모두 큰 혜택을 입는 ‘일석삼조’가 되지 않을까.

‘책 읽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독서문화 확산과 출판산업 발전을 위해 ‘책 읽는 우수가족 10만 세대 선정(이하 10만 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인물이 있다. 2005년부터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이하 독서진흥회)를 이끌고 있는 김을호 회장(50)은 “독서의 달인 9월 11일부터 10만 세대 책 사주기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말했다.

10만 세대는 김 회장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다. 먼저 책 읽는 가정 확대를 시도한다. 가정 내에 책 500권 이상을 보유하거나 가정 내 보유 도서와 도서관 및 관내 문고 대출권수를 합쳐 500권이 넘는 가정을 독서진흥회가 ‘책 읽는 우수 가정’으로 선정해 다양한 혜택을 준다. 독서진흥회는 우수 가정에 인증 스티커와 위촉장을 수여하고 신간도서 북콘서트 우선 참석권 등을 제공한다. 큰 혜택은 아니지만 책 읽는 가족에게는 더없이 큰 영광이다. 이 가정들이 책을 읽기 위해선 도서를 구입해야 한다. 김 회장이 최근 침체된 출판계를 위해 한 가정당 매월 책 1권 사주기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는 이유다. 김 회장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 학부모들에게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는데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작은 미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10만 세대까지 확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책 사주기 프로젝트는 전문가들과 협의해 구입할 책을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잘나가는 대형 출판사 책은 일단 배제한다. 중소 및 독립, 1인 출판사가 대상이다. 좋은 책을 만들고 있는데 주목받지 못하는 출판사와 작가를 키우기 위해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라지는 동네 서점 활성화를 위한 목적도 있다.

“지금 출판사, 저자, 동네 서점 등 출판계가 아주 어렵다.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 시대다. 심지어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출판계의 위기는 국민을 위해서도 잘 극복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얻는 많은 영양분은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온다.”

김 회장은 “조선시대 때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큰 곤욕을 치렀다. ‘10만 세대’는 대한민국 독서문화 창조를 위한 ‘10만 양병설’로 보면 된다. 10만 세대가 모두 독서를 한다면 대한민국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현 가능성은 어떨까. 현재 김 회장과 뜻을 같이하는 학부모가 3000명이 넘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임인 네이버 밴드 ‘김을호의 독서예찬’ 회원이 900여 명이고 다음 카페 ‘김을호의 독서예찬’ 회원도 2000여 명이다. 김 회장이 3주간 무료로 제공하는 ‘학부모 독서 교육 전문가과정’을 수료한 사람만 3000명이 넘는다. 9월 처음 시작할 때 최소 한 번에 3000∼4000권의 책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특정 책을 일약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이다. 최근 요리계의 대세 백종원 씨가 지난해 낸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가 10만 권 넘게 팔렸다고 한다. 출판사나 저자가 10만 권을 넘게 팔면 큰돈을 벌게 된다. 김 회장의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진행돼 10만 세대를 달성한다면 출판계의 엄청난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나 학부모들이나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다. 독서문화 확대와 침체된 출판계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 모든 과정은 외부 전문가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주위에서 걱정하는 영향력 남용 등에 대해선 늘 조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전국구 ‘독서 강연’ 강사로 유명하다. 서울은 물론이고 제주와 울산, 경남 함양 등 오라는 곳이면 언제든 달려간다. 연간 300∼500회의 강연을 한다. 김 회장은 “많게는 연간 3만여 학부모들 앞에 선다”고 말했다. 유료 무료 강연을 따지지 않는다. 독서문화를 확장할 수 있다면 어떤 연단이든 다 선다. 자녀에 대한 공부법과 독서법이 주내용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관심이 많다. 서울에서 잘나가던 사설 입시학원 강사 출신이라 학부모들을 웃고 울리는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가 독서 강연에서 강조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독서에도 열정과 끈기,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결핍돼 있거나 어렵게 살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간절함 같은 게 있어야 열정이 나온다. 열정이 없다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책도 대충 읽으면 소용이 없다. 끈기가 필요하다. 난 책 한 권을 30번 이상 읽는다. 한 번 읽고 ‘그 책 읽었다’라고 하면 안 된다. 집요하게 꼭꼭 씹어 30번은 읽어야 그 책을 완전히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책도 목표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이이 선생이 후학 교육을 위해 마련한 정신수양서 ‘격몽요결’에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생을 바르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김 회장은 1990년대 사설 입시학원에서 잘나가던 강사 출신이다. 서울 노량진 정진학원 강북캠퍼스(월곡동)를 맡아 운영하던 시기였다. 당초 영어 강사였지만 사회탐구 과목이 시원치 않아 영어에서 번 돈을 사회탐구에 쓰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회탐구 11개 과목을 공부해 혼자 다 가르쳤다. 그런데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강의한다’는 소문이 퍼지며 빅히트를 쳤다. 이때부터 ‘사탐 명강사’로 명성이 났고 한 강의에 수백 명이 몰릴 정도였다.

독서진흥회를 만난 것은 2005년 초. 평소 독서를 즐기고 학생들에게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지인을 통해 이 단체의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해 5월 이사로 합류했고 9월 회장이 됐다.

독서진흥회는 1991년 서정주 시인과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이응백 서울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책 읽는 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를 만들어 이듬해 창립한 단체다. 초기엔 국고 지원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 끊겼고 회장과 임원들이 갹출하거나 후원을 받아 운영하다 보니 살림이 어려웠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맡았다. 고생 많이 했다. 지금까지 까먹은 돈도 많다. 학원 할 때 번 돈도 다 썼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놓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근근이 버티고 있다.”

사실 김 회장이 독서진흥회를 만난 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 잘되는 입시학원을 바탕으로 사업까지 했는데 한순간 잘못돼 2008년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집도 날리고 월세로 사는 신세가 됐다. 그때 책이 마음을 다잡아줬다.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뭐든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게 책이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독서문화 확대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유다.

“현대사회가 지식기반사회에 접어들면서 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 치열한 경쟁사회의 결과로 삶의 의미 성찰 등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모든 과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서다. 책은 하나의 보물상자다.”

독서진흥회를 맡은 뒤 다양한 일을 추진했다. 군부대 독서 지원, 대통령상 전국고전읽기 백일장대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발표대회,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 창립, 안중근 의사 사형 언도일 독서캠페인….

올 4월부터 ‘위문도서 한 가족 자매결연 사업’을 시작했다. 한 가족이 장병 1명에게 책 2권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과거 ‘위문편지’와 비슷하다. 학부모는 조만간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으로 책에 위로의 글을 적고 학생들은 군인 아저씨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월부터는 육군3사관학교에 독서 강연을 다니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는 거의 다 군대에 가야 한다. 학생과 부모 모두 언젠가는 군 입대를 고민해야 한다. 논산 육군훈련소에 연간 10만 명이 입소한다고 한다. 군대가 힘든 곳이 아니라 즐겁게 지내는 곳이 되기 위해 독서가 중요하다. 올해부터 훈련병들에게도 독서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런 김 회장의 헌신적인 독서문화 확대에 힘을 보태는 곳도 많다. 미래엔(대표 김영진)은 연간 1만2000권의 책을 지원한다. 한국마사회 강북지사(지사장 김영립)는 지역 공원에 리틀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사업을 지원한다. 리틀라이브러리는 지역 공원 등에 조그만 도서관을 만드는 것으로 최근 시작했다. 김 회장은 “공원을 찾아서도 책을 읽게 하기 위한 사업이다. 한 공원에 50개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자신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서예가 동기창이 서화에서 향기가 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권했다는 말이다. 책 만 권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 리를 여행하며 실천해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실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을호 회장이 만든 독서 감상문 쓰는 양식. 생각 하나, 이유 3개, 그리고 결론을 적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김을호 회장이 만든 독서 감상문 쓰는 양식. 생각 하나, 이유 3개, 그리고 결론을 적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책 읽고 든 생각 1개, 이유 3개, 결론 1개 쓰면 훌륭한 독후감”▼

김을호 회장의 ‘서평 공식’


‘따따하닐쌈일(W.W.H.1.3.1).’

김을호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이 책 감상문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만든 서평의 형식이다. 인터넷 주소 첫 부분 www를 ‘따따따’라고 한 데서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
W(Why)와 W(What)를 따따로 했고 H(How)는 발음하는 대로 하를 썼다. 1.3.1은 강조하기 위해 닐쌈일로 했다.

따따하는 책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가 왜 책을 썼는지(Why)와 어떤 내용(What)을 담고 있는지를 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독자가 어떻게(How) 실천할 수 있을지를 쓴다. 길지 않아도 된다. 간략하게 쓰면 된다.

닐쌈일은 책을 읽고 느낀 독자의 생각을 정리한다. 먼저 책을 읽고 든 생각을 하나 쓰고 그 이유를 3가지 적는다. 마지막으로 자기 생각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린다.

김 회장은 “따따하닐쌈일에 대한 반응이 좋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서평을 쓰지 못하던 학부모들이 따따하닐쌈일은 쉽게 정리한다. 일단 이런 식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정리를 잘해야 읽은 책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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