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뉴스 코멘트 단골’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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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지면 그가 나타난다… 팔방미인 심리학자

곽금주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걸린 육심원 작가의 작품 ‘휴식’ 앞에 섰다. 곽 교수는 “늦게까지 연구하며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무 생각이 없는 그림 속 소녀를 보면 휴식이 찾아온다. 늘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근데 연구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소녀랑 나랑 닮았대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안 예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곽금주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걸린 육심원 작가의 작품 ‘휴식’ 앞에 섰다. 곽 교수는 “늦게까지 연구하며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무 생각이 없는 그림 속 소녀를 보면 휴식이 찾아온다. 늘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근데 연구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소녀랑 나랑 닮았대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안 예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오늘의 곽금주.’

올 초부터 서울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제목이다. 언론에 소개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55)의 ‘코멘트’를 학생들이 모아 정리해 놓는 글이다. 곽 교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언론 보도에 단골로 등장하는 코멘테이터다. 곽 교수의 말을 인용한 신문 보도는 이런 식이다. ‘…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 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매일 또는 2, 3일 간격으로 올라오는 ‘오늘의 곽금주’에 “아, 나도 봤는데 한발 늦었네요” “또 곽금주 교수…” 하는 댓글을 달며 놀이처럼 즐긴다. 인터넷 검색창에 ‘곽금주’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곽서심교’가 뜬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학자로서 발언한 내용을 제자들이 놀이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을까.

“웬일이야. 전혀 몰랐어요. 하하.”

7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곽 교수는 활력이 넘쳤다.

“나는 심리학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요. 모든 사회 현상을 심리학으로 다 풀겠단 생각입니다. 기자의 전화를 거절하지 않고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인터뷰하는 중에도 기자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SBS 예능 프로그램 ‘짝’을 찍다 숨진 채 발견된 일반인 출연자, 국가정보원에 협력했다가 자살을 시도한 조선족의 심리를 묻는 전화였다. 한 방송사는 연구실로 찾아와 대학 내 군대문화에 대해 묻기도 했다.
―기자들에게서 하루 평균 몇 통의 전화를 받나요.

“많을 땐 열 통 이상 받아요.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으면 사건이 터졌구나 직감해요. 하루는 방송 인터뷰만 일곱 번 한 적도 있어요. 아, 이거 신문에 나가면 연구는 안 하고 기자 전화만 받는 줄 알 텐데….”

휴대전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선뜻 전화기를 내준다. 카카오톡 친구 추천에는 276명이 떠 있었다. 곽 교수는 모르지만 곽 교수의 번호를 저장한 사람들이다. 친구 추천을 살펴보니 익숙한 기자 이름이 많았다.

―황당한 질문도 많이 받았겠어요.

“2011년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설이 터졌어요. 지상파 방송사 기자가 ‘서태지가 오랫동안 자신의 결혼에 대해 침묵했던 심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난 ‘그것까지 어떻게 아느냐. 서태지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지요. 지상파 뉴스면 연예인 사생활보다 다른 것을 취재하라고 하고 끊었죠. 그랬더니 같은 방송사 연예 프로그램에서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대통령 심리를 묻는 기자도 있는데요, 뭐.”

―기자들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기가 귀찮지 않나요.

곽금주 교수가 연구실에 붙여놓은 ‘Never ever give up’이란 그림. 인터넷 화면 캡처
곽금주 교수가 연구실에 붙여놓은 ‘Never ever give up’이란 그림. 인터넷 화면 캡처
“하하하. 나는 재밌어서 해요. 미국에서 심리학은 굉장히 대중적이죠. 모든 사회 현상을 심리학으로 풀어내요. 며칠 전 다른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데 ‘썸 타다’를 아느냐고 묻더군요. 난 그걸 기자와 통화하면서 어떤 개념인지 진작 알고 있었죠. 기자들 전화 받으면 세상 돌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남보다 빨리 알게 돼요. 그걸 심리학으로 해석해 보고 또 대중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설명하는 게 직업병인지라 남이 물어오면 대답을 참기도 힘들어요.”

곽 교수는 자기에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26세 때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개론’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군 제대 후 복학한 남학생들이 득실했다. 남학생들은 또래 강사에게 “같이 놀자”며 농을 걸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즐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땐 강의를 진짜 잘해서 제압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강의실 밖에서 또 한 번 벽에 부닥쳤다. 10여 년 전 방송에 처음 출연했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난관이 닥치면 이걸 뛰어넘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방송도 관두지 않고 꾸준히 연습했더니 알기 쉽게 전달하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곽 교수는 언론 코멘트 때문에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1년 2월 게임의 폭력성을 다룬 지상파 뉴스다. 당시 방송사 기자는 한 PC방의 전원을 갑자기 차단했다. 한창 게임에 몰입해 있던 청소년들은 PC가 꺼지자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다. 곽 교수는 방송에서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나타난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과다한 공격성이 일어나면서 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코멘트를 했다.

―억지 실험에 뻔한 소리를 했다고 욕을 많이 먹은 것 알고 계신가요.

“게임 중독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할 거면 실험실에서 제대로 된 실험을 해야 한다고 기자에게 말했어요. 실험실에서 같이 실험도 했는데 그 내용은 쏙 빠지고 코멘트만 들어갔어요. 욕하는 e메일도 많이 왔는데,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다 설명해줬어요. 나중에 KBS 개그콘서트에서 PC방 실험을 패러디하자 동료 교수가 걱정돼서 찾아왔어요. 내가 딱 한마디 했죠. ‘나 흉내 낸 여자 예뻐요?’ 그랬더니 그 교수가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돌아갔어요.”

―기자들에게 섭섭하지 않나요.

“동료 교수가 ‘왜 이렇게 뻔한 말을 했느냐’며 방송 뉴스를 보여줬어요. 기자와 길게 통화를 했는데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취재한 것처럼 자기 말로 다 하고 내 부분은 뻔한 바보 같은 말만 나갔어요. 기자에게 설명했고 기자는 골라서 썼고, 틀린 말이 나간 게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요. 실컷 기자에게 설명했는데 신문에 안 나갔다고, 때론 말한 것과 다르게 나갔다고 불평하는 교수도 있어요. 쉽게 잘 설명해주면 될 텐데….”

―언론 노출에 안달한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저, 방송한다고 설쳐대는 사람도 아니에요. 한 지상파 프로그램 출연 요청을 받았어요. 어떤 프로인지 보니까 심리학자가 전혀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안 간다고 했더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온다고 꼭 나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대통령도 이런 프로 나올 필요 없겠네’라고 말한 뒤 가지 않았어요. ‘싸가지 없다’는 소리 좀 들었죠.”

곽 교수의 책상에는 자신을 삼킨 새의 목을 조르는 개구리 그림이 붙어 있다. ‘Never 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곽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새의 목을 졸라 살아나려는 개구리처럼 산다. 학부 강의 ‘흔들리는 20대’와 대학원 수업을 맡고 있다. 단행본 ‘습관의 심리학’ ‘도대체 사랑’에 이어 이달 말엔 콤플렉스를 다룬 책 ‘마음에 박힌 못 하나’를 낸다. 신문 두 군데에 칼럼과 에세이도 쓴다. 2002년부터 시작한 ‘빈곤이 취학 전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비교종단 연구’도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사회 이슈와 연계된 주제 선정과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 2003년부터 10년간 한국연구재단 교육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연구비를 받았다. 더 받아 적으려다 손을 멈췄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정이다. 곽 교수는 “20대 시절부터 하루 4시간밖에 안 잤다. 요즘 낯빛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면시간을 늘렸다. 우리가 동면하는 동물도 아니고 90세까지 살면서 30년을 잘 수는 없다”고 톡 쏘았다.

“스물셋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집과 학교를 오갔어요.(결혼 당시 그의 남편은 검사였다.) 보수적인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3개월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죠.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려니 집중을 안 하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어요. 그때부터 습관이 붙으니 시간을 쪼개고 긴장감 넘치게 사는 게 좋았어요.”

―그래도 빠듯한데요.

1970년경 어머니와 찍은 삼 남매 사진. 어머니 문성희 여사, 곽금주, 승준, 승엽 남매(키 순서대로).

곽금주 교수 제공
1970년경 어머니와 찍은 삼 남매 사진. 어머니 문성희 여사, 곽금주, 승준, 승엽 남매(키 순서대로). 곽금주 교수 제공
“내가 푼수형이라서 인기예요. 밥 먹자, 커피 마시자 사람들이 막 찾아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그럴 때 문을 살짝 잠가 놓고 연구도 하고 글도 써요. 바쁠 때는 ‘나를 왕따시켜 달라’고 하소연도 해요.”

―교수가 된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 희망은 딸이 시집가서 평범한 주부로 살며 당신과 음악회를 다니는 거였어요. 중고등학교 때 공부 실컷 시키더니 서울대 아동학과를 보내셨어요.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고 공부도 못하게 했어요. 자꾸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었어요. 심리학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재밌어서 그 공부만 했지요.”

―삼 남매가 모두 명문대 교수가 됐어요. 비결이 있나요.(곽 교수의 동생은 곽승준 고
려대 경제학과 교수(54),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49)다.)

“어머니가 타이거맘이었어요. 굉장히 엄격했죠. 무엇이 되라고는 안 했지만 뭐든지 완벽하게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우리가 능력 있다고 자만하면 못 참았죠. 난 살짝 머리가 나쁘니 항상 노력하긴 했어요. 기업인 출신인 아버지는 누구 밑에서 일하는 직업은 안 하길 바란다고 은근 교수를 원하긴 했죠.”

―엄한 집이라고 다 반듯하게 크진 않을 텐데요.

“지금은 사정상 어렵지만 지난해까지 일요일에 꼭 한 끼는 부모님, 삼 남매와 그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밥을 먹었어요. 우리끼리 자기 자랑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러죠. 이 모임을 2, 3주 빠지면 어머니한테 죽어요.”

―동생들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인데 사이가 좋은가요.

“내가 걔네들 다 제압했어요. 하도 동생들을 꽉 잡으니까 내 전화 안 받으면 죽는 줄 알아요. 대학 1학년 때 여섯 살 아래 막내를 때리면서 가르쳤어요. 그래서 승엽이는 ‘내가 수학 못 하는 것은 누나한테 배워서 그렇다’고 말하고 다녀요. 엄한 집에서 자라도 우리 셋 다 끼가 넘쳐서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해요. 승준이는 이종격투기 하고 승엽이는 피아노 치잖아요.”

인터뷰는 끝났다. 취재 수첩을 덮고 물었다.

“정치를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람들이 많이 묻는데 난 정치 절대 안 해요. 심리학 빼곤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럼 곽금주는 무슨 심리인가요.”

“그 질문은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내 속은 내가 알 수 없는 거예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곽금주#뉴스 코멘트#서울대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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