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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賞을 받은 한국인들]<9>유명희 KIST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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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賞을 받은 한국인들]<9>유명희 KIST연구원

동아일보입력 2004-03-07 20:00수정 2014-08-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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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시대에 보물섬으로 꼽히는 단백질을 찾아 나선 유명희 단장. 그는 21세기 프로테오믹스호의 선장인 셈이다. -김미옥기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유명희(柳明姬·50)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흔히 잘나가는 과학자들은 박사학위 논문이나 박사후 과정 논문이 주목을 받으면서 ‘뜨는’ 게 보통이지만, 유 박사는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발표한 논문들을 통해 국제적인 분자생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은 인간게놈 프로젝트 이후의 새로운 표적을 단백질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질병이 단백질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그중에서도 ‘단백질 접힘’ 분야에 대한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5년 단백질 접힘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힌 실험 논문을 ‘네이처 구조생물학’에 발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유 박사가 1998년 ‘여성과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의 첫 회 수상자로 결정된 것도 이 연구의 중요성 덕분. 이 상은 국제심사위원단에 의해 연구업적을 인정받은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유럽, 라틴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5대 대륙 여성과학자에게 주어진다. 수상자들은 각각 10만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단백질 접힘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렇다. 단백질의 기능은 그 구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 단백질 구조는 긴 사슬처럼 연결된 아미노산이 용수철 모양으로 말리거나 접히면서 공 모양의 입체구조가 돼야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 단백질이 사람의 몸속에서 자신만의 입체구조를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단백질 접힘인 것.
유 박사에게 로레알-유네스코상은 ‘작은 좌절’과 함께 기억된다. 상을 받기 직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여기서 아직 할 일이 있어서겠지’라고 여유 있게 생각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수상 소식이 들려 왔어요.”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책 읽기가 큰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도 생물이 아닌 국어였다고. “인생의 성패는 독서량에 달려 있다는 모교 이화여고 정희경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정말 동감해요. 역사적 교훈을 얻는 곳도 책이요, 경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판단해 볼 수 있는 곳도 책 아니겠어요.”
그는 책 이야기가 나오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비롯해 이문열의 소설들, ‘람세스’ ‘로마인 이야기’ ‘마녀가 더 섹시하다’ 등의 내용을 줄줄 풀어 놓는다. 하지만 요즘은 하도 바빠 주로 외국 출장 때 비행기에서 독서를 즐긴다고 한다.
6남매 중 다섯째. “부모님의 관심 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그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볼 수 있었던 셈이니까요.”
로레알-유네스코 세계 여성과학자 상

그래서일까, 유 박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요즘도 운전을 하거나 산에 오를 때면 늘 새로운 길에 도전해 본다. 이런 유 박사의 성격은 연구가 난관에 부닥쳤을 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방법에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특성을 분석하고 싶은 단백질이 너무 쉽게 분해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어요. 분해되지 않도록 20가지가 넘는 물질을 썼지만 잘 안 됐어요. 그때 ‘아예 발상을 달리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분해를 저해하는 물질을 쓸 것이 아니라 분해가 되지 않는 낮은 온도에서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었죠.”
섭씨 4도 이하로 유지되는 ‘콜드 룸’에서 가운 속에 스웨터를 껴입은 채 오전 5시까지 실험하고 다시 9시에 출근하기를 밥 먹듯이 한 끝에 결국 자신의 방법으로 실험에 성공했다.
이런 그에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은 연구과정보다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 많다. “연구는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는데, 아이들 문제는 언제나 예측불허로 다가오니 힘들 수밖에요.”
두 아들은 한창 자랄 때 팔다리가 부러져 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외과 병동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한번은 미국에 출장 가 있을 때였다. 큰아들이 팔이 부러져 입원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작은아들이 폐렴에 걸렸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에서 그런 전화를 받는 제 심정이 어떻겠어요.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죠.”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대화가 되는 친구들로 자란 게 대견스럽기만 하다.
유 박사에게 단백질은 평생의 친구다. 그것도 늘 놀라움과 겸손함을 가르쳐 주는 친구다. “모든 단백질은 자신만의 3차원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어요. 한 단백질을 분석하는 데에 쓰인 방법이 다른 단백질에는 적용이 안 돼요.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단백질인 셈이죠. 단백질에 대해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고 확신하는 순간 또 다른 단백질이 내 앞에 나타나요. 마치 내가 아는 것은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 한줌에 불과하다는 듯이….”
요즘 그는 하루를 25시간으로 만들어 지내고 있다.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른다. 21세기 프런티어 사업단인 프로테오믹스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발족한 지 1년반이 되면서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연구에 가속도가 붙고 있어요. 한국인에게 자주 발생하는 질병인 골다공증, 당뇨, 동맥경화, 치매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발굴해 내고 이것이 신약 개발로 이어지도록 원인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낼 겁니다.”
장경애 동아사이언스기자 kajang@donga.com
▼나를 있게한 남성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유명희 박사도 주변 남성들의 배려와 격려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힘을 줘 온 그 남성들에 대한 추억.
▽아버지=“너는 시집도 가지 말고 유학 가서 공부해라.” 똑똑하던 언니들이 모두 대학 졸업 후 시집을 가버리자 서운함을 표현하던 아버지의 말씀. 어린 유명희의 가슴에 작은 이정표가 됐다.
▽남편=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남편의 모습을 본 선배가 놀라워하자 “내가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요”라며 웃던 사람. 그는 지금도 유 박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두 아들=“엄마가 생물학을 한다고 해서 저한테도 생물학을 강요하지 마세요.” 지금 대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인 두 아들은 엄마의 인생과 자신들의 인생이 별개라고 생각한다. 집안을 늘 전쟁터 분위기로 만들던 아들들이지만 이젠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 신기하다.
▽지도교수와 동료들=미국 MIT의 박사후 과정 지도교수 조너선 킹. 그는 유 박사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유 박사에게 킹 교수는 항상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과학이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줬다.
또 한사람, 서른 살에 MIT 교수가 되면서 단백질 접힘 분야에서 화려한 연구업적을 낸 피터 김 박사. 유 박사는 자신보다 네 살 아래인 김 박사의 당시 MIT 연구실에서 학생들이 김 박사의 생각과 말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1년간 김 박사의 연구실에서 ‘연구실 경영’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유명희 박사는
△1954년 서울 출생
△1976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
△1981년 미국 버클리대 미생물학 박사
△1981∼85년 미국 MIT 대학원 박사후 과정 연구원
△1985∼2000년 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2000년∼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2000∼200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단백질긴장상태연구단장
△2002년∼현재 21세기 프런티어 사업단 프로테오믹스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
△1996년 제1회 생명공학원상 수상, 제3회 목암생명과학상 본상 수상
△1998년 제1회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수상
△2001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2년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2003년 ‘2003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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