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질환자들 “효과 좋은 신약, 비싸서 꿈도 못 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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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있어도 못 쓰는 환자들
중증 천식-아토피-루푸스 환자, 부작용 위험 큰 스테로이드로 치료
신약 비용 부담 줄여줄 ‘위험분담제’… 목숨 위급한 병 아니면 적용 안돼
“환자 고통 덜어줄 방안 찾아야”

중증 천식 환자인 정동일 씨는 증상 완화를 위해 매일 흡입용 스테로이드와 함께 20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왼쪽 사진). 루푸스 환자인 김진혜 씨도 매일 15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부작용이 큰 약을 매일 먹는 건 중증 질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다. 채널A 영상 캡처
중증 천식 환자인 정동일 씨는 증상 완화를 위해 매일 흡입용 스테로이드와 함께 20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왼쪽 사진). 루푸스 환자인 김진혜 씨도 매일 15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부작용이 큰 약을 매일 먹는 건 중증 질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다. 채널A 영상 캡처
중증 천식 환자인 정동일 씨(45)의 소원은 숙면이다. 그는 밤마다 의자에 기대 30여 분씩 쪽잠을 잔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 천식 발작 때문이다.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는 7년째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비가 와 습도가 높아지기만 해도 숨쉬기가 버겁다 보니 멀리 여행을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천식을 앓은 뒤 정 씨 가족의 여행지는 가까운 산이나 수목원이다.

○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중증 질환자들의 고통

체육대학 출신인 정 씨는 학창시절 역도 선수를 할 만큼 건강했다. 하지만 10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 대상포진을 앓은 뒤 나타난 천식 증상은 열흘 만에 급속히 악화됐다. ‘상세 불명의 중증 천식.’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내려진 최종 진단명이다.

정 씨는 “웬만한 약은 다 써 봤고 온갖 치료를 다 받았다”며 “지금까지 약값과 병원비로 거의 1억 원은 썼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고주파 열을 이용해 기관지 근육을 넓히는 ‘기관지 열 성형술’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매일 증상을 완화해주는 약을 복용하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치료법이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고통이 워낙 크다 보니 그는 한때 우울증까지 앓았다. 정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완치가 어려운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도 매 순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한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매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 같다’며 천형(天刑)과 같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의 삶의 질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만큼이나 낮다.

○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신약만 기다리는 환자들

희귀난치성 질환인 루푸스 환자들도 평생 약으로 증상을 다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루푸스는 전신에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 회장이자 자신도 루푸스 환자인 김진혜 씨(42·여)는 3월 루푸스 합병증인 말초혈관 장애가 생겨 왼쪽 손목에 정상 혈관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한 지 1개월 반이 지났지만 그의 왼손 끝은 멍이 든 것처럼 시퍼렜다. 김 씨는 “루푸스 환자들이 합병증으로 몸이 서서히 망가지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중증 천식과 아토피 피부염, 루푸스 환자들은 평생 부작용이 큰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하는 것 역시 큰 고통이다. 스테로이드는 당장 증상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지만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김 씨는 “스테로이드 부작용 중 하나인 ‘무혈성 골괴사’(뼈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괴사하는 증상)로 젊은 나이에 인공관절을 심은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 당장 죽지 않는다고 약값 경감 제도 배제

이렇다 보니 중증 질환자들은 부작용이 덜한 신약을 쓸 수 있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13년 루푸스 신약인 ‘벤리스타’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50년 만에 새로 나온 약이다. 2016, 2017년에는 중증 천식 신약인 ‘누칼라’와 ‘싱케어’가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해 8월에는 20년 만에 나온 중증 아토피 피부염 신약인 ‘듀피젠트’가 국내에 출시됐다.

이 네 개의 약은 모두 기존 치료제보다 부작용이 덜하면서 치료 효과는 뛰어나다. 하지만 현재 이 신약을 쓰는 환자는 극소수다. 주사제인 신약을 맞으려면 회당 100만∼200만 원, 연간 2000만 원가량이 들기 때문이다. 이 신약들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비싼 신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위험분담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가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되 해당 제약사가 수익의 일부를 환급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나눠 지는 제도다. 하지만 그 적용 대상은 기대 여명이 2년 미만인 질환으로 제한돼 있다. 죽음에 비견될 만큼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중증 질환자들은 당장 치료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서울아산병원 조유숙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소수지만 기존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중증 환자들에게는 이런 신약이 꼭 필요하다”며 “최소한 이런 환자들은 신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약값을 낮추거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공태현 채널A 기자
#중증 질환#스테로이드#부작용#위험분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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